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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벼랑끝에 선 두 남자 박찬호·이승엽




누군가는 “꿈”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도 아니었고, 거짓말도 아니었다. 한국야구 최고의 타자 이승엽(35)과 최고의 투수 박찬호(38)는 지난해 말 연이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와 계약하면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고 꿈꾸었을 법한 일이 2011년 마침내 현실로 펼쳐지게 됐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과연 재기에 성공할까.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새로운 무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타율 0.163(92타수 15안타) 5홈런 11타점. 지난해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거둔 성적이다. 2008년 45경기에서 8홈런, 2009년 77경기에서 16홈런. 최근 3년간 총 홈런수는 29개에 불과하다.

연평균 10개도 채 되지 않는다. 일본 내에서도 “이승엽은 끝났다”는 평가와 함께 “새로운 팀을 물색하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5천만엔짜리 선수다”는 혹평도 나왔다.

그럼에도 오릭스는 이승엽의 가치를 인정했다. 계약기간 2년을 보장하며 연봉 1억5천만엔(약 20억원)의 조건을 내밀었다.



지난해 연봉 6억엔(약 80억원)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지만, 적어도 아직은 ‘5천만엔짜리 선수’는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오릭스는 기회만 보장받으면 거포의 위용을 다시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승엽은 오릭스에 입단하자마자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30홈런 1백타점을 올리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아가 그는 “올해 안에 32개의 홈런을 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9년간 3백24홈런, 일본에서 7년간 1백44홈런, 한일통산 4백68홈런을 기록 중인 그는 올해 안에 한일통산 5백 홈런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다.

박찬호의 오릭스행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아시아 최다승 투수…. 그런 박찬호가 1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다는 점도 뜻밖이었지만, 일본에서 뛰게 될 팀이 이승엽과 같은 오릭스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지난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개인통산 1백24승을 기록했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의 1백23승을 넘어 아시아 투수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을 새롭게 작성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모두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선발투수보다는 불펜투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발을 보장한 오릭스의 러브콜은 구미가 당겼다.


연봉 1백20만 달러, 인센티브 1백만달러 등 최대 2백20만달러(약 24억7천만원)의 조건은 둘째였다. 박찬호는 “일본 진출이 아니라 일본무대 도전으로 봐 달라. 미국에 처음 갔을 때처럼 도전하겠다”며 초심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는 또 다른 일본 야구를 접하고 경험하는 것도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구에서 선수와 감독의 궁합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감독이 쥐고 있고, 거꾸로 감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선수를 잘 만나야한다.

오릭스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별명은 ‘지장보살(智將菩薩)’이다. 선수에게 한번 기회를 주면 끝까지 믿는 스타일이다. 일본야구의 풍토가 번트와 히트앤드런, 잦은 투수교체 등 이른바 ‘스몰볼’이 대세지만 오카다 감독은 이 같은 조류를 거부하고 있다. 한마디로 ‘감독의 야구’가 아닌 ‘선수의 야구’를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이승엽과 박찬호는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을 전망이다.



오카다 감독은 지난해 4번타자를 맡아 타율 0.331, 24홈런, 84타점을 올린 외국인 선수 알렉스 카브레라가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자 “차라리 잘 떠났다”며 환영을 나타냈다. 그 공백을 이승엽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카다 감독은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홈런 3방을 몰아친 지바 롯데 이승엽을 막지 못해 우승을 놓쳤다. 이승엽은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에도 유난히 오카다 감독이 있는 한신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런 인상이 아직도 오카다 감독의 뇌리에 남아 있을게 뻔하다.

박찬호에 대한 믿음도 강하다. 오카다 감독은 벌써 “두 자릿수 승리를 기대한다”며 반기고 있다. 지난해 17승을 거둔 가네코 지히로와 10승을 기록한 기사누키 히로시에 이어 3선발을 맡긴다는 복안이다.

박찬호는 오릭스 입단 후 “사실 이승엽 때문에 오릭스를 선택했다”고 고백했고, 이승엽도 “박찬호 선배와 한 팀에서 뛴다니 흥분된다”며 반겼다. 외국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은 늘 외로움과 싸워야하는데, 절친한 사이인 이들이 한솥밥을 먹는다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박찬호의 아내 박리혜 씨는 재일동포 3세지만 도쿄에 친정이 있다. 이승엽의 아내 이송정 씨 역시 그동안 도쿄 인근 생활에만 익숙했다. 낯선 오사카 생활이지만 아내들도 든든한 벗이 생겼다. 또한 박찬호의 두 딸 애린(5)과 세린(3), 이승엽의 외아들 은혁(6)은 또래다. 가족들끼리 서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의지하며 지낼 수 있는 환경이다.

결국 원정경기가 많은 박찬호와 이승엽도 가족 걱정을 덜고 마음 편히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연고지가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라는 사실도 장점이다. 한국식당도 많고, 재일동포들의 응원 또한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박찬호에게 일본야구는 생소하다. 그의 성공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야구 전문가들도 구위보다는 이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미국 타자들과 달리 일본타자들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볼과 유인구에 방망이가 잘 따라 나오지 않는다.

웬만한 공은 커트해내는 일본타자들에게 고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일본 선수들을 잘 아는 승엽이에게 조언을 얻겠다”고 했고, 이승엽은 “사소한 것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돕겠다”고 화답했다.

박찬호가 ‘적응’을 화두로 삼고 있다면, 이승엽 ‘재기’가 목표다. 이승엽은 지난해 간간이 출장하며 15안타를 기록했다. 그 중 홈런만 5개였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파워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1군무대에서 간간이 출장해 실전감각이 떨어졌을까봐 걱정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승엽은 “밀어치기 훈련으로 기본기를 다시 찾겠다”면서 역시 “경험 많은 박찬호 선배에게 도움을 얻겠다”고 했다.

박찬호는 10승, 이승엽은 30홈런을 올 시즌 성공의 기준점으로 잡고 있다. 한국야구 1백년사에서 최고투수와 최고타자로 평가받는 박찬호와 이승엽의 위대한 도전에 팬들의 가슴은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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