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해남읍에서 승용차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30분쯤 달렸을까. 조산리라는 곳에 이르자 민재평 가나안농장 대표의 그림 같은 집이 나타난다. 집 바로 뒤편에 3개의 화훼온실이 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카네이션 화훼온실 안에서 기타를 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일로 시작된다. “해남에 오면 땅끝도 있고 카네이션도 있네….” 직접 곡을 만들고 노랫말을 지어 붙인 재목 없는 노래를 부르면 하루를 힘차게 열어제낀다. 그 옆에서 수확을 돕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네 조상님이 그랬잖아. 흥겨운 노래가 고된 일을 던다고.”
민 대표의 카네이션 예찬론은 유별나다.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꽃과 음악의 공통점은 아름다움을 초월해 뭇사람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것 아니겠어요?”
[B]1993년 귀농… 카네이션 재배에 ‘전념’[/B]
그는 한때 서울과 경기 일대 나이트클럽, 미8군 클럽 등을 누비며 활동하던 언더그라운드 기타리스트였다. 그러다가 1993년 고향땅 해남으로 귀농했다. 당시 불현듯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고향이 몹시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귀농 후 단감, 호박, 옥수수 등을 재배하다 경험 부족으로 적자를 면치 못해 포기하고 1996년부터 카네이션 재배에 전념했다.
“잘 아시다시피 ‘남도 끝자락’ 해남은 참 따뜻한 곳이잖아요. 꽃을 개화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을 갖췄어요. 당시 해남에서는 아무도 카네이션을 재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재배한 셈이죠. 다른 지역에 비해 ‘땅심’이 좋아서인지 품질이 더 좋았습니다.”
민 대표는 1996년 다섯 농가와 함께 ‘카네이션 작목반’을 결성해 본격적인 카네이션 재배에 나섰다. 각 농가가 독자 경영하되 판로 유통 부문만 공동으로 함께 했다.
그해 작목반은 더 좋은 카네이션을 생산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찾았다. 선진국에서 직접 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네덜란드에서 다양한 카네이션의 품종과 특성을 열심히 보고 배웠다.
그 결과 5월에만 출하하는 단발적 생산형태라는 점을 비롯해 품질표준화 미비, 영세한 경영구조, 체계적인 출하시스템 부족 등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작목반을 육성하고 연중 출하할 수 있는 일정 물량 확보 및 적정재배 면적을 통한 품질 향상에 주력했다.
[B]꽃 색깔 선명하고 흠집 없어 제값 받아[/B]
해남군청 농산유통과에서 원예특용작물을 담당하는 김흥균 계장은 “민 대표의 낙천적인 성격과 도전정신이 오늘의 작목반을 이끌었다”면서 “그의 강한 추진력 덕분에 카네이션이 해남을 대표하는 일등 특용작물로 부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해남군청에서 ‘해남 카네이션의 산증인’인 민 대표로부터 카네이션 재배기술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해남 카네이션은 꽃봉오리가 3~4㎝, 직경 1.5~2.0㎝, 꽃잎 길이가 1㎝ 이상 된 것을 수확한다. 일찍 개화한 꽃은 3~12주까지 저온 저장했다가 출하한다. 카네이션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온도 관리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민 대표가 모든 카네이션 재배 농가를 찾아가 적정온도를 맞춰주는 등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역경도 없지 않았다. 1998년 5월 카네이션 출하를 앞두고 값싼 중국산 카네이션 800만 송이가 대량 수입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5월 성수기 한 달만 보고 출하하는 농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포기하는 농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중국산 카네이션이 검역 문제로 수입이 크게 줄어들자 국내 카네이션 농가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9년 농가마다 큰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그해 8월 태풍 ‘올가’로 인해 많은 농가가 화훼온실과 집을 잃는 어려움도 겪었다.
마침내 2000년 호황이 시작됐다. 카네이션을 수확하는 즉시 매출로 이어졌다. 한 묶음에 7000~1만 원하던 도매가격이 1만5000~2만 원 선까지 올랐다. 2003년에는 10여 농가가 4.2ha(재배면적)에서 180만 송이까지 생산했다.
해남군 북평읍 평암리에서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김성호(38) 늘푸른농원 대표는 “해남 카네이션이 경쟁력과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꽃 색깔이 유달리 선명하고 대(줄기)가 굵어 쉽게 손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카네이션에 윤기가 돌고 흠집이 거의 없어 제값 받고 판매할 정도로 도매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B]중국산 물리치고 일본시장 장악 ‘시간 문제’[/B]
지난해에는 17개 농가 작목반이 5.4ha 면적에서 220만 송이의 고품질 카네이션을 생산했다. 카네이션은 어버이날 등이 낀 5월에 가장 많이 출하된다. 해남 카네이션은 지난해 5월 전국 물량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의 점유율을 보였다. 당시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의 카네이션 총 매출이 9억8000만 원이었는데 이중 4억9000만 원이 해남 카네이션 몫이었다. 또 지난해 일본 화훼시장에 50만 송이를 수출, 1억5000만 원을 벌어들였다.
해남읍 현산면 황산리에서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박남훈(56) 예빈농원 대표는 “해남 카네이션은 중국산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시장에서 저가의 중국산을 따라잡고 수출을 늘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연작 피해가 그것이다.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계속 심을 경우 5~10년이 지나면 흙의 성질이 바뀌거나 땅의 영양분을 작물이 다 빨아들여 같은 품질의 작물 생산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카네이션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에서 흙을 퍼와 농장의 흙과 바꾸는 방법이 있지만 비용이 엄청나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를 위해 작목반은 부엽토 등을 이용해 토양 미생물을 증식하거나 격리상 재배 등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또 하나는 대체작물을 재배하는 것. 작목반이 2004년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알스트로매리아를 대체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현재 380여 평에서 시범재배를 마친 가운데 올 하반기부터 출하할 계획이다.
알스트로매리아는 모종(묘목) 값만 평당 6만9000원으로 농가 부담이 적지 않다. 하지만 1년에 1개 줄기에서 70송이의 꽃을 수확할 수 있고 연중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꽃의 수명이 한 달 이상이어서 해외 수출에도 적격이다. 민 대표는 “알스트로매리아가 카네이션의 연작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해남의 새로운 대표작물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RIGHT]최재영 기자[/RIGHT]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