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얕은 연못이 있다. 아이들이 종종 놀기도 하는 곳이다. 바쁘게 이곳을 지나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뗄 정도의 어린아이가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 주위엔 아무도 없는 위급한 상황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다만 며칠 전 새로 산 신발이 더러워지고 양복도 다 젖을 것이다. 아이를 구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회사에는 틀림없이 지각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호주의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난해 출간된 <죽음의 밥상>에서 “동물의 목숨을 빼앗고 그 죽은 몸뚱이를 먹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느냐”고 역설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왜 내가 번 돈으로 남의 아이를 구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한다. 그는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기부’에 관해 말하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상황에 빠질 때 “그냥 가겠다”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매일 각종 매스미디어에 보도되는, 가난으로 삶을 위협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부나 봉사활동 등으로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자료를 보면 매년 거의 1천만명에 달하는 5세 이하 어린이가 빈곤 때문에 죽는다. 또 세계은행(IBRD)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한다. 이들은 적당한 음식, 물, 주거, 의복 등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 충족이 어려운 절대빈곤 상태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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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에선 매년 1천억 달러어치의 음식이 버려진다. 미국인은 주당 40시간을 일해 겨우 2시간의 노동만으로 1주일분의 먹을거리를 구하고 대부분의 돈은 소비재, 오락, 휴양 등에 쓴다. 세계 인구의 6분의 1은 이처럼 안락한 삶을 누리며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에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번 돈으로 차를 사고, 집도 사고, 풍요롭게 사는 것인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는 큰돈이 필요치 않다. 무심하게 행하는 쓸데없는 소비만 줄이면 충분히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수돗물을 마셔도 되는데 굳이 사서 마시는 생수를 비롯해 외식, 옷, 집치레 등 꼭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줄이면 밥을 못 먹어서, 혹은 약을 못 먹어서 죽어가는 아이들 수만명을 살릴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번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당위성’까지 확보하지는 못한다. 사치를 할 권리가 있더라도 그것을 당연히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윤리적 행동을 외면한다면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소득의 5퍼센트 기부’를 주장한다. 이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는 적정선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상황이 최악일지라도 절대빈곤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보다 낫기 때문에 이 정도의 기부는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부를 해야 하는 이유로 거액 기부자로 유명한 빌 게이츠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게이츠는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난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가 “아프리카에 쏟은 원조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하자 짤막하게 답했다.
“저는 이를테면 한 아이가 살아났다고 할 때 그것이 국민총생산(GNP) 증가를 뜻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값지지요.”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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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