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남자화장실에는 소변기 중앙부에 파리가 그려져 있다. 이 건물의 확장공사를 감독한 경제학자 아드 키붐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소변을 보면서 파리 그림을 맞혔고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은 80퍼센트나 줄었다. ‘깨끗이 사용하자’라는 캠페인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좋은 효과를 낸 것이다.
미국 시카고의 레이크쇼어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경치 좋은 도심 도로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S자 커브가 연달아 이어진 곡선 구간에서 사고가 빈발했다. 시 당국은 속도가 증가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커브에 가까이 갈수록 하얀 선을 도로에촘촘히 그려 넣었다. 이후 사고율은 줄어들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시카고대)와 캐스 선스타인(하버드대) 교수의 공저 <넛지>에 소개된 ‘넛지(Nudge)’ 효과의 사례들이다.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쿡쿡 찔러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을 지녔지만 이 책에서는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된다.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눈을 떠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좀 더 잘까’ ‘아침 식사를 할까’ 등 모든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항상 옳은 선택만 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휴대전화의 기본설정처럼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디폴트 옵션을 따르려는 성향이나 흥행 영화에 몰리는 동조현상 등 다양한 상황들로 인해 똑똑한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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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넛지를 통해 누구나 타인의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 넛지는 외부에서 개입을 하되 행동하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 올바른 선택을 이끄는 힘이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표방해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부여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넛지를 유도하는 이들을 ‘선택 설계자’라고 부른다. 환자 본인이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을 말해주는 의사에서부터 구내식당 음식을 배치하는 조리사까지 우리 현실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들어준다. <넛지>의 공저자들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넛지’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 아이디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영국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를 활용한 정책을 수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선스타인 교수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금융, 환경 등 각종 규제를 총괄하는 백악관 정보·규제 담당 실장을 맡고 있다.
최근 그의 제안으로 소비자금융보호국(CFPA)이 신설됐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등 복잡한 금융상품 때문에 소비자들이 겪는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상품의 판매를 인가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부서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국민의 충동적인 선택을 줄여 경제위기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 책은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외 최고경영자(CEO) 1천2백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휴가 때 읽을 만한 추천도서’ 중 하나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8월 초 휴가지에서 읽은 책으로도 알려졌다.
대통령이나 CEO들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현명한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변기 속 파리 그림’처럼 유연한 사고의 전환을 추구하는 넛지의 힘을 우리 모두 믿고 따라야 할 때다.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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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