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금동신묘명무량수삼존불입상(金銅辛卯銘無量壽三尊佛立像, 국보 제85호)은 서기 571년에 주조된 고구려 불상이다. 앙련(仰蓮)을 딛고 선 석가여래 뒤에 배 모양의 광배가 붙고, 광배 양쪽에도 협시불이 조각된 특이한 형태다. 광배 뒷면에는 8행(行)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조성 경위와 연대를 확증할 수 있다. 명문은 ‘다섯 명의 도반이 스승과 부모를 위해 아미타불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571년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1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400년이 넘은 희귀한 불상이다.
1930년경 황해도 곡산(谷山)에서 이상한 불상이 출토되었다는 정보가 주재소를 통해 평양경찰서에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온 고등계 형사 나카무라 신자부로(中村眞三郞)는 선심 쓰듯 발견자에게 400원을 주고 인수했다. 개성과 강화도에서 올라온 고려청자도 다수 소장했던 나카무라는 그러나 금속유물에는 안목이 어두운 편이었다. 기대에 차 이곳저곳에 불상의 감정을 의뢰했더니, 모두 중국의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것이라면 너무나 흔해 일본인에게 인기가 없었다. 실망한 그는 내버릴까 하다가 화장실 선반에 아무렇게나 얹어놓았다.
얼마 후 거래를 위해 나카무라 집에 들른 거물급 골동상 아마이케(天池)는 어쩐지 이 불상이 귀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8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서울로 내려오면서 아마이케는 이토 마키오(伊藤愼雄)에게 되팔기로 작정했다. 이토는 동양제사(東洋製絲) 사장을 지내면서 지위와 부를 이용해 이 나라 청자만을 수없이 수집했던 자다. 아마이케가 애원하자 3000원을 건네고 불상을 인수했는데, 며칠 뒤 집으로 찾아온 세키노에게 보여주자, 세키노는 대단한 불상이라며 국보감이라고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세키노 다다스(關野貞, 1867~1935)는 동경제국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건축사학자로 조선의 주요 고적지와 건물, 폐사지까지 조사해 1904년 ‘한국 건축 조사보고’를 발표했으며 이 자료는 이 땅의 매장 문화재를 노리던 악질 일본인에게 도굴과 약탈의 지침서가 되었다.
세키노는 이 불상을 ‘조선 미술사(朝鮮美術史)’와 기타 저서에 사진과 함께 실으면서, 출토 경위와 가치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는데 가격이 금세 10만~15만원까지 치솟았다. 그 후 이 불상은 골동상 장석구에게 넘어갔다. 장석구는 폐망 후 쫓겨가던 일본인들이 헐값으로 판 골동품을 거의 쓸어담다시피 수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석구 집으로 일제 때부터 금속유물로 이름을 날린 허름한 차림의 김동현이 찾아왔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허름한 차림의 김동현을 깔본 장석구는 2만5000원을 불렀다. 기와집 한 채 값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토 마키오가 소장했을 때는 15만원, 아니 기와집 100채 값에 해당하는 천하의 보물이었다.
세월은 흘러 불상의 가치를 인정한 문화재관리국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85호로 지정했으며, 김동현은 이 불상을 약 45년간이나 간직하다가 80세가 넘어 더 이상 소장할 수 없자, 고구려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1992년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양도했다. 1995년 문화재관리국에 소장자의 명의를 김동현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변경 신고를 할 때 10억원이란 거래 가격이 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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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