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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27호

세계를 설레게 한 톰 왓슨의 투혼



7월 19일(현지시간) 영국의 스코틀랜드 턴베리GC(골프 코스)에서 막을 내린 제 138회 브리티시오픈. 내로라하는 골퍼 1백56명이 출전해 경합을 벌인 가운데 스튜어트 싱크(36·미국)에게 ‘클라레 저그(우승컵)’가 돌아갔다. 하지만 나흘 간의 전쟁에서 전세계 골프팬의 시선은 ‘4홀 연장전’ 끝에 진 톰 왓슨(60·미국)에게 집중됐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4·미국)와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파드리그 해링턴(38·아일랜드)에게 관심이 쏠렸다. 왓슨은 과거 브리티시오픈에서 5승이나 올렸지만, 나이 때문인지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왓슨은 첫날 공동 2위, 둘째날 공동 1위, 셋째날 단독 1위, 그리고 마지막날 17번 홀까지도 1타차 선두였다. 왓슨의 선두 행진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메이저대회 최고령 챔피언 탄생’을 눈앞에서 볼 수도 있겠다며 흥분했다.
 

하지만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그토록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쳐왔던 왓슨은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기록, 연장전 승부 끝에 결국 2위를 하고 말았다.
 

최고령 우승 기록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뒤돌아선 왓슨이지만 골프팬들은 왓슨을 ‘위대한 골퍼’의 반열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통상 골퍼의 나이와 샷의 비거리는 반비례한다. 미국 센트럴아칸소대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2003년부터 5년간 2백39개 미국프로골프(PGA) 대회 챔피언의 평균 나이는 35.05세다. 역대 최고령 우승 선수는 1965년 그레이터그린스보로오픈 정상에 오른 샘 스니드(당시 52세 10개월). 왓슨은 이번 활약으로 ‘골프에는 정년퇴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왓슨은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클럽을 잡았다. 주니어 시절 몇 차례 대회에서 입상하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보여줬다. 몇해 뒤 그는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한다. 전공은 심리학. 그래서 왓슨에게는 ‘스마트’, ‘엘리트’, ‘지성 골퍼의 상징’, ‘골프 치는 심리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왓슨은 대학을 졸업한 1971년 프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데뷔 초기 부진으로 일부 기자들은 그를 ‘허클베리 핀(촌티 나는 선수)’이라고 폄하했다. 왓슨은 프로 전향 4년째인 1974년 웨스턴오픈에서 첫 승을 거두며 그의 시대를 알린다. 왓슨은 PGA투어에서 39승, 챔피언스(시니어)투어에서 12승을 거뒀다. 39승 가운데 메이저대회는 8승, 그 가운데 5승을 브리티시오픈에서 올렸다. 이는 전설적인 영국 골퍼 해리 바든(6승) 다음으로 많은 승수다.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 보유자인 잭 니클로스조차 브리티시오픈에서는 3승밖에 못 올린 것을 보면 왓슨이 얼마나 링크스 코스(바다에 접한 골프 코스)에 강한지 알 수 있다. 브리티시오픈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링크스 코스 8곳을 순회하며 열리는 것이 특징. 링크스 코스는 바람이 거세고 날씨가 변덕스러워 ‘자연과의 싸움’,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다.
 

왓슨은 프로 데뷔 5년째인 1975년 카누스티GC에서 브리티시오픈 첫 승을 올린 다음 2년 후 턴베리GC에서 니클로스와 골프 역사에 남을 만한 명승부를 펼친다. 두 선수는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는데 71번째 홀까지 왓슨이 1타 앞섰다. 승부처는 마지막 72번째 홀. 니클로스가 먼저 기적 같은 버디에 성공했다. 이제 왓슨이 버디를 잡아야 우승할 판. 왓슨은 7번 아이언 어프로치샷을 그림같이 홀에 붙인 뒤 버디를 잡아 ‘거성’ 니클로스를 무너뜨린다. 스코틀랜드 날씨답지 않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두 선수가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것과 같다고 하여 마지막 날 경기엔 ‘태양의 결투(duel in the sun)’라는 이름이 붙었다. 왓슨은 그 승리를 발판 삼아 1980년대 중반까지 니클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왓슨에게는 브루스 에드워즈라는 캐디가 있었다. 그의 전성기를 함께하다시피 한 캐디다. 1982년 페블비치GL(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US오픈 최종 라운드 17번홀(파3)에서 그린사이드 칩샷이 버디로 연결되며 니클로스를 꺾고 우승을 할 때도 에드워즈가 곁에 있었다. 분신과 같던 에드워즈가 루게릭병에 걸려 사망하자 왓슨은 그를 기억하고자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일을 펼치고 있다. 또 고향인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주니어 골퍼와 일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항상 온화하다. 버디를 잡으면 갤러리의 환호에 두 팔을 들어 공손히 답례하고, 플레이가 잘 안 될 때에도 성내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막판에 우승을 앗아간 싱크에게 미소로 축하해주었다. 불과 9개월 전 엉덩이 교정수술을 받았는데도 나흘 내내 한결같은 모습으로 올드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왓슨은 ‘60세에 메이저대회 2위’라는 위업 말고도 ‘골프는 인내심과 배려, 그리고 누구에게나 미완인 스포츠’임을 일깨워주었다. 우즈, 최경주, 앤서니 김 등 톱랭커들이 줄줄이 컷 오프로 탈락한 가운데 우승 문턱까지 간 그의 ‘노익장’에도 박수를 보내지만, 나흘 내내 흔들리지 않은 샷과 전략, 온화함과 평정, 골프는 ‘파워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실증한 본보기라는 점에 더 많은 갈채를 보낸다.
 

글·김경수(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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