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도자기를 감상할 때는 때깔과 형태 그리고 문양의 멋을 즐기는데, 모두 완벽할 정도로 흠이 없다. 동체는 피어오르는 연꽃 형상이고, 병목에는 연꽃 봉오리를 안은 동자 인형을 배치해 청자 중에서도 가장 겸허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풍긴다. 윗도리는 꽃봉오리 모양이고 아래위가 조롱박 모양이 되어 자연을 소재로 했으며, 비록 주구(注口)와 손잡이가 수리되었으나 더 이상 견줄 데가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청자진사주전자를 생각하면 필자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95년 가을 필자가 호암미술관에 근무할 당시, 하루는 재단 이미지 광고를 촬영했다. 한 소녀가 이 청자진사주전자를 바라보며 우리 문화재의 향기를 음미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좀 더 생생한 화면을 얻기 위해 촬영팀이 진품을 진열장 밖에 꺼내 받침대를 설치하고 찍기를 원했으나, 필자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한참 동안 촬영팀과 실랑이가 오갔으나 필자는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촬영팀은 모조품을 12만원에 구해와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세트가 갖춰지고 촬영팀의 지시로 소녀가 문화재로 다가가는 그 순간,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위치를 옮기던 소녀가 땅바닥에 어지러이 깔린 전선줄에 걸려 넘어졌고, 순식간에 가짜 청자진사주전자가 딱딱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필자는 ‘아!’ 하는 비명이 절로 났다. 만약 진품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소중한 도자기는 1963년경 강화도에 있는 최항(崔沆)의 무덤에서 묘지와 함께 도굴되었다. 그 후 일본에 불법 반출되어 1970년 오사카시립박물관 전시에 출품되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호암 이병철은 우수한 문화재를 되사와야 한다는 사명감에 중간책을 내세워 경매에 임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사오라는 명령이었다. 중간책은 경매가 진행되는 오사카박물관에 도착해 기라성 같은 일본인 수집가들과 경쟁을 했다. 당초 이 도자기는 일본 내에서도 100만 달러를 호가해 살 사람이 없을 거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경매는 1000만원부터 시작됐다. 이쪽 저쪽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급기야 2000만원이 넘어섰다. 결국 사상 유례가 없는 거금 3500만원에 호암미술관에 낙찰,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우리 것을 거금을 주고 도로 산 셈이지만, 민족자본의 성장이 문화재 수호와 연결된 기막힌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일제가 들어오기 전에는 단 한 점도 세상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이 청자의 우수성에 눈을 뜬 일본인이 총을 들이대며 강화도·개성 근처의 고려 고분을 도굴해, 일본에만 3만여점이 넘게 건너갔다고 한다.
유네스코 협약에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원 소유국에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식민지를 다스려 그 나라의 문화재를 송두리째 도륙했던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타국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원 소유국에 돌려준다면 그들의 국립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다. 문화재는 국토이다. 한 점을 잃으면 그 값어치만 한 땅을 잃는 것과 같다. 문화재 한 점을 지키기 위해 애쓴 선각자들은 문화재의 소중함과 그것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소임은 그렇게 물려받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전시를 통해 기회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나아가 후손에게는 선조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물려주어 민족의 정체성을 훌륭히 이어가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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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