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군선도가 19세기에 들어 순조와 철종의 세도 정치, 민란, 그리고 후반기에 열강 제국의 침략과 약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자료로 확인되는 것은 일제시대 경남 합천에 사는 임상종(林尙鍾)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고서화 수집에 깊이 빠진 임상종은 남의 돈까지 빌려다 고서화를 사 모았고, 빌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급기야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최상규(崔尙奎)에게 수집했던 군선도를 비롯한 3백여 폭의 고서화가 넘어갔다.
고리대금업자 최상규는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림을 팔러 나서자마자 소문을 듣고 군선도를 차지한 사람이 민영휘(閔泳徽, 1852~1935)의 차남인 민규식이었다. 민영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강점기를 통해 온갖 영화를 누린 인물로, 명성황후가 집권할 당시에는 탐관오리의 우두머리로 소문났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민규식 또한 장안의 거부로,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 그런 그가 고서화를 수집하자 골동품계에 소문이 금세 퍼졌다.
민규식이 소장하던 군선도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51년 1·4후퇴 직후의 부산에서였다. 당시 부산은 서울의 기라성 같은 수집가들이 1·4후퇴를 기해 소장품을 몽땅 싸 들고 내려와 고미술품 거래가 활발하던 때였다. 어느 날 부산 시청 앞 대로변에 자리잡은 고두동(高斗東)의 가게에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그때 가게에는 1·4후퇴 때에 가까스로 피난 온 손재형도 함께 있었다. 그는 들어선 여자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골동품을 거래하면서 서로 안면이 있던 민규식의 부인이었다. 당시 이 그림은 고미술품을 수집하던 장석구(張錫九)에 의해 500만환에 이야기되었지만 어이없게도 군선도는 일본으로 밀반출되고 말았다. 전세가 불리하자 민규식의 부인이 군선도를 팔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동경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아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김홍도의 대작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다시는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할 위기에 처했던 그때, 그 사실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이 손재형이다. 국보급 문화재의 반출에 대해 그는 가슴을 치며 통탄하고, 하루빨리 되찾아 오라고 민규식의 부인을 다그쳤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본으로 전보를 쳤다.
하늘이 도왔던지 이 그림은 그때까지 팔리지 않은 채 아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9·28수복으로 한국의 정세가 안정되자 군선도는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돌아온 군선도를 손재형은 상당한 값을 치르고 인수했다. 그 후 정치에 투신한 손재형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군선도는 삼성의 이병철에게 옮아갔다. 군선도는 1971년 12월 21일 국보 제139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호암미술관을 거쳐 삼성미술관 리움에 진열되어 있다.
고제희·대동풍수지리학회 학회장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