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꼭꼭숨은 우리문화재 뒷얘기 | 고구려 금동반가사유상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구려 금동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이다. 이 불상은 중국·일본·한국을 통해 가장 오래된 4세기 후반의 고구려 반가사유상이다. 머리에는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얼굴은 약간 숙여 깊은 사색에 빠졌는데 고구려인의 웅혼한 무사 기상이 엿보인다. 높이 17cm에 머리 뒤쪽에는 광배를 꽂았던 광배꽂이가 돌출되었고, 전면에는 녹이 나고 침식으로 뺨을 짚었던 오른손이 결실되었다.

이 불상은 1940년 평양의 병기창 우물에서 한 인부가 출토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당대 최고의 금속유물 감식가였던 고(故) 김동현 씨는 불상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처음 접한 국보급 문화재였기 때문이다. 단번에 국보급 문화재임을 알았던 그는 불상을 헐값에 살 수도 있었으나 빚까지 얻어 기와집 3채 값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그리고 소문이 나 일본인에게 빼앗길 경우에 대비해 원산의 처가댁에 숨겨놓았다. 하지만 소문을 듣고 ‘오쿠라’라는 일본인이 찾아왔다. 오쿠라 씨는 일제 때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수장하고, 또 가장 많이 일본으로 반출해 지금 동경국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에 한국미술품 약 3000여 점을 기증한 사람이다.






오쿠라 씨는 김 씨를 찾아가 갖은 호의를 베풀며 5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 50만원은 기와집 250채 값이었다. 이 돈만 있으면 거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군의 아들인 김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거절했고, 결국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하는 오쿠라를 물리쳤다. 우리 문화재를 일본인에게 절대로 팔 수 없다는 집념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생명을 건 문화재 수호는 계속됐다. 해방 후 소련군이 들어와 개인재산을 인정하지 않자 그는 이 불상을 가지고 평양에서 남하했다. 도중에 소련군에게 붙잡혀 빼앗길 뻔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또 6·25 때에는 아내를 서울에 남겨둔 채 부산으로 피난 와 막노동을 하면서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불상을 지켰다.

그 후 불상은 골동 애호가들의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60년 초에는 1억원에 구입 의사를 밝히는 사람까지 있었으나 김 씨는 모두 거절했다. 이후 국내외의 여러 전시회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은 불상은 1964년 국보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호암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80이 넘은 나이에, 자식까지 없어 처리를 고심하던 김 씨가 1994년 호암미술관에 양도했다. 무려 53년 만이었다. 지금의 ‘고구려 금동반가사유상’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일본의 거물도 무릎 꿇게 만들었던 민족의 긍지가, 김동현 씨의 피눈물 나는 애환이 배어 있다.

고제희·대동풍수지리학회 학회장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