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국역도가 세계역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장미란(26·고양시청)이 11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막을 내린 2009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 최중량급(75킬로그램 이상급)을 제패한 뒤, 29일에는 안용권(27·국군체육부대)이 남자 최중량급(1백5킬로그램 이상급) 정상에 올랐다.
‘역도의 꽃’으로 불리는 최중량급은 육상 1백 미터와 비견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인간이 탄생하는 체급이기 때문.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한 국가가 남녀 최중량급을 모두 휩쓴 것은 처음이다. 한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24·강원도청)은 남자 77킬로그램급 용상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은 결국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고 성적(금 6개, 은 3개, 동 5개)을 거뒀다. 메달 수에서 중국은 금 18, 은 11, 동 10, 카자흐스탄은 금 9, 은 1, 동 2로 1, 2위였다.
한국은 메달 수에서는 카자흐스탄에 밀렸지만 각 체급의 1등부터 25등까지 포인트를 부여하는 대회 규정에 따라 남녀부에서 각각 종합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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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여자 최중량급 용상(1백87킬로그램), 합계(3백23킬로그램)에서 2관왕에 오르며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2005, 2006, 2007, 2009)의 위업을 세웠다. 1987년부터 시작한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4연패를 이룬 선수는 중국의 리야쥐안(1990∼1993년)과 탕웨이팡(1995∼1998년)뿐이다.
국제역도연맹(IWF) 기자단은 2009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부문 ‘베스트 리프터(Best Lifter)’로 장미란을 선정했다. 베스트 리프터는 세계 역도선수의 최우수 선수(MVP) 격이다.
“다시는 한국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장미란의 부담감은 컸다. 기록 경신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소속된 고양시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고양시는 80억원의 예산을 들여 ‘장미란체육관’까지 만들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미란은 고양시에서 열린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과 용상 1차 시기를 모두 실패했다. 10년간의 선수 생활 중 처음 겪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용상 3차 시기에서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을 넘어섰다.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 장호철(55) 씨는 “정말 극적인 경기였다”면서 “딸의 경기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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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직전, 운동과 관련된 꿈을 자주 꿀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컨디션도 많이 나빠진 상황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장미란은 성경책이나 기독서적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장미란은 “잘 안 될 때는 최대한 심플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장미란은 어느덧 고참 선수다. 그는 자신의 슬럼프 극복에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상심한 마음까지도 다독여주는 선배다. 지난 8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직후 장미란은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온 박태환(20·단국대)에게 산책을 청했다. 박태환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의 부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장미란은 “운동에 대한 얘기는 일부러 안 했다”고 했다. 박태환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렸기 때문이다. 함께 걷는 길이 길어질수록 ‘국민오누이’의 따뜻한 정은 쌓여갔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태릉선수촌에서 보낸 장미란은 2010년 1월 9일까지 약 한 달간의 ‘꿀맛’ 휴가를 받았다. 그간은 “가장 큰 유흥이 강남역 근처에서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꽉 짜인 생활이었다.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장미란에게는 이번에도 이룰 수 없는 ‘숨겨둔’ 꿈이 있다. 나이 서른이 되는 해 단짝 친구 2명과 함께 하기로 한 세계 일주 약속이다. 공교롭게도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은 장미란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는 해다. 장미란은 “친구들은 미리 세계 일주를 시작하고, 영국을 돌 때쯤 나보고 합류하라는데, 지켜질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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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권은 지난 6월 2009 한중일대회에서 인상 2백6킬로그램을 기록해 2002년 ‘아시아의 역사’ 김태현(40·고양시역도연맹회장)이 세운 한국기록(2백5킬로그램)을 갈아치웠다. 마침내 ‘다크호스’는 대형 사고를 쳤다. 2009 세계선수권 용상(2백47킬로그램), 합계(4백45킬로그램) 금메달이다.
한국이 세계역도선수권 남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사상 최초다. 이전 최고 성적은 1999년 아테네 대회에서 김태현이 획득한 용상 은메달이다.
안용권에게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던 사에이드 알리호세이니(21·이란)가 대회 도중 훈련하다 팔꿈치를 다쳐 출전을 포기하면서부터 서광이 비쳤다. 안용권은 용상 3차 시기에서 2백47킬로그램을 뽑아들며 아르템 우다친(29·우크라이나)과 합계에서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몸무게가 덜 나가는 안용권이 결국 1위.
남자대표팀 이형근(45) 감독은 안용권을 ‘타고난 역사(力士)’라고 평가한다. 1백88센티미터, 1백42킬로그램의 다부진 체격. 하지만 거구에 걸맞지 않게 누구보다 부드러운 몸을 지녔다. 안용권은 주니어 시절부터 차세대 주자로 각광을 받았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 이후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슬럼프를 겪다가 상무 입대를 계기로 재기에 성공했다.
남자역도 1백5킬로그램 이상급은 올림픽 2연패(2000, 2004)를 달성한 ‘인간 기중기’ 후세인 레자자데(31·이란)의 은퇴 이후 무주공산이었다.
안용권이 2012 런던올림픽까지 세계 정상을 지키려면 베이징올림픽 금·은메달리스트인 마티아스 슈타이너(독일)와 예프게니 치기셰프(러시아)의 벽을 넘어야 한다. 두 선수는 이번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 불참했다.
안용권은 “이번 대회는 출전 선수들의 수준이 다소 낮았고, 나 또한 내 최고 기록(인상 2백6킬로그램, 용상 2백50킬로그램)을 들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세계기록을 목표로 하겠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세계기록은 레자자데의 인상 2백13킬로그램, 용상 2백63킬로그램, 합계 4백72킬로그램이다.
글·전영희(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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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