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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07호

미슐랭 가이드와 자갯, 그리고 과학자 린네 생각


음식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미슐랭(Michelin) 가이드나 자갯(Zagat) 서베이와 같은 훌륭한 레스토랑 가이드북이 없냐는 것이다. 사실 한식 세계화를 주요 정책으로 삼고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의 하나로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을 생각하면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식 세계화는 한식당 세계화를 바탕으로 시작돼야 한다.


외국인들이 처음 한식을 경험하는 것은 가정집이 아니라 한국 식당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믿고 참고할 만한 레스토랑 가이드북이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인사동과 명동의 식당가를 기웃거리는 일본인들은 모두 일본 잡지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유럽 사람들과 미국인, 중국인들에겐 좋은 안내서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좋은 레스토랑 가이드북은 무엇보다 분야별로 랭킹을 매길 만큼 다양하고 많은 레스토랑과 이를 평가하는 권위 있는 비평가와 시스템, 그리고 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돼야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평가의 대상이 될 만한 좋은 식당이 별로 없다. 우리 식당들은 너무 자주 바뀐다. 한자리에서 수십 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식당이 없다. 전통을 지키고 있는 식당이라고 해야 하동관이나 용금옥, 우래옥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레스토랑 개업 기사가 실리지만 1, 2년이 지난 후에도 살아 있는 식당은 절반이 넘지 않는다. 그러니 눈여겨볼 만한 식당이 문을 열어도 그에 대해 평가하는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에 비하면 가까운 일본은 어떠한가. 1백년이 넘는 라멘집과 스시집, 장어구이집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음식과 식당문화가 발전하게 되고 이를 알리는 좋은 안내서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음식과 와인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레스토랑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다른 이유는 없을까. 여기서 음식문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풀어야 할 더 큰, 숨은 어려움 하나를 고백해야겠다.


바로 우리나라 음식과 식당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 음식이 아닌 경우야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중식, 일식 등으로 아쉬운 대로 겨우 가닥을 잡는다고 하지만 우리 음식은 어떻게 분류할까. 갈비집, 곱창집, 만두집, 국밥집, 고깃집, 백반집, 매운탕, 설렁탕과 갈비탕, 간장게장과 낙지찜, 김치찌개… . 횟집과 일식집, 스시집은 어떻게 다른가. 고깃집과 갈비집은? 설렁탕과 고깃집의 관계는? 갈비탕과 갈비집은 같은 항목으로 분류해야 하나?


자갯 서베이 도쿄판은 일본 음식을 복(鰒), 오뎅, 소바/우동, 덴푸라, 우나기(장어), 스시, 돈가스, 전통 일식, 샤브샤브, 야키도리, 야키니쿠 등으로 명확하게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음식점은 이런 식으로 명쾌하게 분류하기 아주 힘들다.




매번 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Carolus Linnaeus)가 생각난다.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과학자들만 열거해도 한 권의 인물사전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이 중에서도 나는 린네를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으니까. 당대의 수많은 다른 과학자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린네의 특징은 일관성, 질서, 단순성, 그리고 시의적절함이었다. 그는 1만3천여 종의 식물과 동물에 이름을 붙이거나 기록을 남겼다.


지렛대를 받쳐줄 지렛목을 놓아준다면 지구라도 들어보이겠다는 아르키메데스의 호언처럼 나는 누군가 명쾌한 분류만 해준다면 좋은 가이드북을 만들 수 있겠다고 탄식한다.


우리 음식의 바른 영어 표기와 명확하고 체계적인 분류는 한식 세계화를 위한 아주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한식 세계화 추진본부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글·손일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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