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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남한 쪽 민간인통제선의 경계가 파주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받아 든 지도에서 임진강의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붉은 선으로 표시된 통제선을 보니 낯설기 그지없다. 민간인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임진강을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다기에 찾아간 곳이 국사봉 아래 두지나루터다.

이곳에서 황포돛배를 타면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단다. 네모진 나무배의 지붕에 올린 황포 돛이 바람에 펄럭인다. 이 배는 조선시대 원형을 복원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황포돛배는 지금의 상암동에 있던 한강 마포나루에서, 서해에서 생산한 소금이며 생선, 젓갈 등의 물건을 싣고 이곳 두지나루터를 지나 임진강 상류로 가는 마지막 포구였던 고랑포구까지 약 50여킬로미터의 강줄기를 따라 운행했다.

쉬지 않고 가면 15시간 걸린다는 길이 보통 보름까지 걸리는 것은 21개의 포구를 들러 물건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데다 임진강이 서해의 조수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특히 고랑포구 앞의 여울목은 평소 수심이 40센티미터에 이를 만큼 얕아 썰물이 되면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다(실제 여울목은 19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이용됐던 루트이기도 하다).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두지나루터를 출발한 배는 거북바위를 지나 임진강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높이 10미터의 자장리 적벽을 지난다. 6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수직 무늬의 절벽 아래쪽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생긴 선명한 가로줄무늬로 인해 그 신비로움이 배가된다.

봄이면 흰 꽃을 피우는 돌단풍나무가 적벽에 달라붙었고, 겸재 정선은 적벽의 풍경에 취해 그 유명한 ‘임진적벽도’를 남겼다. 임진강에는 이런 적벽이 11개가 있는데 북한 쪽에 7~8개가, 남한 쪽에 서너 개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자장리 적벽 맞은편에는 호미로 파고 정으로 쪼은 듯 섬세한 무늬가 돋보이는 원당리 적벽이 서 있다.

배는 적벽을 지나 고랑포 여울목 앞으로 다가간다. 이곳이 남방한계선이다. 개성 송악산이 눈앞이다. 마포나루를 떠난 황포돛배의 종착지인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인구 2만5천여 명이 살던 번성한 상업도시였다. 종로 화신백화점과 동양백화점의 분점이 있었고 지금의 대학병원 규모에 해당하는 우리병원도 이곳에 있었단다.

전쟁 후 분단이 되면서 도시는 사라졌고 오래전 영화는 흑백사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돛배는 이러저런 사연과 시간을 싣고 뱃머리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나아간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잠시 뒤 배는 두지나루터에 도착했다.

임진강을 건너는 두포교 앞에서 총 든 군인에게 “해마루촌 40호에 간다”고 신고를 하고는 민통선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자동차가 지나는 길 이외의 곳들은 대부분 지뢰를 경고하는 푯말과 함께 가시 달린 선으로 막혀 있다. 분단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진동면 동파리의 해마루촌은 민통선 내 대성동과 통일촌과 이웃하는 3개 마을 중 하나다. 대성동과 통일촌은 1970년대 만들어졌고 해마루촌은 2001년 조성됐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이후 52년 만에 다시 조성된 이 마을에 돌아온 사람은 모두 60여 가구 1백50여 명.

마을이 조성될 당시 본인 소유의 땅이 있어야 하며 집을 지을 재정적인 능력이 되는 등 몇 가지 조건을 내 건 탓에 다시 돌아온 주민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사람들이다. 때문에 마을 자체만 놓고 본다면 민통선 내의 긴장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부유한 전원주택 단지처럼 보인다.

잘 손질된 정원을 가진 60여 채의 주택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한껏 묻어 나는 디자인이다. 이 마을을 하늘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처럼 보인다. 몇 해 전 일본의 NHK방송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한반도를 촬영하던 중 이 마을이 높은음자리표처럼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 길의 이름도 ‘높은음자리표길’이다.

마을 방문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여행을 떠나 본다. 마을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제3땅굴과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가 있다. 1978년 서울까지의 거리가 불과 5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길이 1천6백35미터, 폭과 높이 각 2미터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북한의 땅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로 실제 한국인 여행자보다 훨씬 많은 수가 이 땅굴을 둘러본다.




도라산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7백여미터 떨어진 남쪽 최북단의 ‘국제역’이다.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더 킹 투하츠>에서 주인공들이 남북을 오가는 통로로 자주 등장한 터라 친숙하다.

‘국제역’은 대한민국에서 육로를 통해 외국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역이라는 의미다.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기 직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발생한 그날 이후 도라산역의 모든 업무가 중단된 상태이지만 언제라도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출국장 등 모든 시설이 준비돼 있다. 머지않아 도라산역을 통해 북한 땅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멀리 터키에 이르기까지 육로 해외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도라산전망대에 오르면 인공기 아래 논에서 한창 모심기 중인 북한의 농부가 보인다. 망원경으로는 개성 시가지 일부와 개성공단, 김일성 동상까지 볼 수 있다. 개성까지 불과 50리라는데, 마음의 거리는 아직은 더 먼 것 같다.

파주 여행은 청량한 초여름의 숲길을 걸으며 산뜻하게 마무리한다. 파주출판단지 뒤에 버티고 선 해발 194미터의 나지막한 심학산에도 둘레길이 있다. 산이 낮다 하여 그냥 동네 뒷산쯤 되려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울창한 숲과 구불구불 펼쳐진 아름다운 오솔길은 그 어느 유명한 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심학산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양이다. 산 정상은 북서쪽에 치우쳐 있다. 심학산 둘레길은 산의 7부능선을 연결해 만들었다.

둘레길은 동쪽으로 교하배수지와 산마루가든, 약천사, 수투바위, 배밭 정자, 정상전망대 등이 있고 산의 주릉 등산로와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며 수많은 샛길과도 연결된다.

둘레길의 총 길이는 6.8킬로미터, 길 자체에는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천천히 쉬엄쉬엄 걷다가 바람 부는 정자에 걸터앉아 쉬었다 간다 해도 세 시간이면 족하다.

심학산 둘레길은 세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서패리 꽃마을의 제 1주차장과 약천사 앞 제2주차장, 타조농장 아래쪽의 제3주차장이다. 많은 사람이 약천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서쪽 배밭에서 시작해도 괜찮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배꽃과 그 아래 연둣빛 물이 오른 배나무밭을 지나 나무 냄새 폴폴 나는 숲을 지나면 정자가 하나 나온다.




길은 세 갈래로 뻗어 간다. 왼쪽은 둘레길 수투바위 방향, 오른쪽 역시 둘레길 배수지 방면이며 직진하면 정상으로 향한다. 일단 정상으로 올라 본다. 둘레길과 달리 꽤 가파른 길이 시작되고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래도 기분은 괜찮다. 명랑한 새소리가 숲을 가득 채운다. 노랑지빠귀가 머리털을 세우고 땅으로 내려와 잽싸게 벌레를 물고 가고 산비둘기가 호드득 날아오른다. 정상의 정자에 오르면 시야가 툭 트인다. 194미터의 높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자유로와 나란히 뻗은 한강줄기가 오두산 아래서 임진강과 합쳐지는 광경이며 그 너머 북한의 개풍군 지역이 훤히 내다보인다.

강에서 불어온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이마에 흐른 땀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바람에는 달착지근한 꽃 냄새도 섞여 있다.

정상에서 6백미터 정도 내려오면 왼쪽에 운동기구들이 있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 거대한 약사여래대불을 모신 약천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가면 수투바위고 왼쪽 길로 접어들면 산마루가든을 지나 교하배수지를 지나게 된다. 어떤 길로 가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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