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조호성(35), 그는 ‘황제’였다. 적수가 없었다. 2004년 경륜에 입문한 뒤 지난해까지 5년간 상금왕을 네 번이나 차지했다. 그랑프리 우승도 세 번 했다. 매년 상금으로만 2억원 이상을 벌었고, 어떤 해는 수입이 2억6천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경륜장을 누비는 한 부와 명예는 계속될 터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어느 날, 그는 가족회의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이클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게 그의 꿈이었다.
가족들은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아내 황원경(29) 씨는 “꿈 없이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격려해줬다. 황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올해 초 아마추어 팀인 서울시청 사이클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아마추어 복귀 후 첫 대회였던 지난 3월 투르 드 타이완. 정상이 아닌 몸으로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대회 5일째 내리막길에서 그는 힘껏 페달을 밟다가 중심을 잃어버렸다. 자전거는 가드레일을 받은 뒤 5미터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목뼈 3~5번 골절.
정신을 차려 보니 타이베이시 인근의 한 병원이었다.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 구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하늘이 그를 도왔다. 담당 의사는 “당신은 정말 럭키가이(Lucky Guy)”라고 했다. 열흘 정도 지나자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당장 운동을 시작했다. 병원 한쪽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목 부위를 고정시킨 채 부지런히 다리 운동을 했다. 하루를 쉬면 그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2, 3일을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고 이후 조호성은 새 삶을 얻은 기분이었다. ‘1등’의 강박관념은 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도 여유로워졌다. 그는 “그날 이후 허벅지가 찢어지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스러운 훈련도 즐거워졌다. 자전거 위에 앉을 수 있다는 자체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는 자전거의 본고장인 프랑스로 건너가 재활을 겸해 훈련에 매진했다. 체중 감량이 가장 큰 숙제였다. 예전 사이클 선수였을 때 그의 적정 몸무게는 70킬로그램 정도. 하지만 순간 스피드가 필요한 경륜으로 전향하면서 몸무게를 85킬로그램까지 불렸다. 이제 다시 15킬로그램을 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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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으로 치면 중·장거리인 사이클은 마라톤에, 단거리인 경륜은 1백 미터 달리기에 비견될 수 있다. 조호성의 도전은 마라토너가 1백 미터 선수로 변신해 성공을 거둔 뒤 다시 마라토너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그는 4개월여 만에 성공적으로 사이클 선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즐기면서 자전거를 탔기 때문’이었다. 복귀 무대는 지난 10월 열린 전국체전이었다. 남자 일반부 개인도로에서 금메달과 45킬로미터 도로 독주 은메달. 자신감이 더욱 붙었다.
그리고 국제대회 복귀 무대였던 11월 8일의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다짐했다. 20년 넘게 사이클을 타면서 그는 서울 도심을 시원하게 달려본 적이 없다. 더욱이 국내에서 열리는 첫 국제 사이클 대회가 아닌가.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외국 선수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선두 그룹에서 달리던 그는 결승선을 2킬로미터 앞두고 질주를 시작했다. 페달에 온몸의 힘을 실었다. 앞서가던 독일 선수 2명을 단숨에 제치고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1백.5킬로미터를 2시간 15분 5초에 끊었다. 경륜 시절 수없이 했던 1등이었지만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가 꿈꾸는 올림픽 메달을 향한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셈. 하지만 비관적인 목소리도 있다. 9년 전 시드니올림픽 포인트레이스(트랙에서 몇 바퀴를 돌 때마다 순위를 매겨 총점으로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주)에서 그는 단 1점이 모자라 4위를 했다. “한창 때도 안 됐는데 30대 중반의 나이에 과연 되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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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오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가 다시 아마추어로 복귀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열린 베이징올림픽이다. 이 대회 포인트레이스 금메달리스트는 후안 라네라스(스페인). 당시 39세였다. 더구나 라네라스는 시드니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선수다.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이면 조호성의 나이는 38세다. 그는 “나도 할 수 있다. 아니 정말 간절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롤 모델은 수영의 박태환과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수영과 피겨는 지금의 사이클처럼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었을지도 모른다. 조호성은 “수영이나 피겨스케이팅처럼 사이클이 국민에게 힘을 주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투르 드 서울의 우승이 기뻤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면서 내년에는 더 좋은 외국 선수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대회 수준이 올라가고, 수준이 높아지면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고 했다.
조호성은 “요즘 우리나라에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지만 대부분 동호인이 대상이다. 엘리트 사이클도 함께 발전해야 진정한 자전거 강국이 될 수 있다”며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헌재(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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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