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버선코마냥 끝이 살짝 올라간 한옥집 지붕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섰고 아궁이에 불 지핀 굴뚝에선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겨울을 가르는 아이들의 낭창한 웃음소리와 빈 논과 나무 사이를 오가는 겨울새들의 유쾌한 지저귐에 시골마을은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겨울임에도 볕이 어찌나 포근한지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 있는 온기에 얼었던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돌담 한 귀퉁이에 파란색 길이름 표지판이 붙었는데, 그 또한 ‘돌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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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내에서 농사도 짓고 민박집도 운영하며, 쌀엿도 만들고 슬로시티주민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는 송희용씨와 함께 담쟁이 넝쿨 뒤덮인 토석담 길을 따라 함께 걷고 있었다. 문득 그가 손짓을 한다.
돌담을 한번 들여다보란다. 돌담은 울퉁불퉁한 돌 사이를 흙으로 메워 만든 것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돌들의 색깔이 모두 달랐다. 붉은 기가 돌거나 노르스름하거나 푸른빛을 띠거나 한다.
“이 마을 돌담길은 세 종류인데, 황토로도 쌓고 진흙으로도 쌓고 아주 일부지만 근래 들어 시멘트로 쌓은 것도 있지요. 이렇게 진흙으로 돌을 쌓은 게 본래 모습이에요. 예전에는 영실강 상류 지역의 모난 돌을 지게로 져다가 마을의 논흙을 개어 쌓았죠.”
1백 년 전 마을 사람들이 직접 인근 강의 상류 지역에서 돌을 주워 와 흙을 섞어 담을 쌓았는데 비가 내릴 때마다 담장 아래쪽의 흙이 조금씩 녹아내리면서 하부로 갈수록 돌들이 더 드러나게 됐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제는 강에서 돌을 주워올 수가 없으니 새로 보수하는 담장엔 일반 차돌도 사용하고 황토도 사용하지요. 잘 몰랐을 때 세워진 시멘트 담도 일부 있지만 조만간 원래의 흙담으로 바꿔야지요.”
토석담은 거칠고 투박한 멋을 지녔다. 게다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오묘한 색을 내는 돌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S자 형으로 자연스레 굽어진 마을 안길과 둘레길을 따라 돌담은 3.6킬로미터쯤 이어졌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됐다.
돌담 안에는 검은 기와 착착 얹은 매끈한 곡선의 지붕을 가진 고택들도 잘 보존돼 있다. 집의 나이만큼 늙어 버린 고목들이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치고 시간을 보낸다. 감나무도 있고 밤나무, 느티나무도 있다. 삼지내에는 보존가옥으로 지정된 여러 채의 역사적인 고택들이 있는데 대부분 개방하고 있다.
근대 애국애족 계몽운동가인 고재선의 가옥과 1900년대 초 창평상회를 건립해 일제의 자본 침탈에 대항하고 이 지역의 일본인 상권을 몰아낸 고재환의 가옥을 비롯해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 춘강 고정주 고택 등 장흥 고씨 일가의 고택과 장전 이씨 고택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삼지내의 고씨 일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충렬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로 강점기 시대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일제 때 일본인이 발도 못 붙인 ‘3성3평’ 고장이 있었죠. 3성은 보성·장성·곡성을, 3평은 남평·창평·함평을 이르는 말이에요. 창평은 그만큼 민족주의가 강한 곳이었고 여러 인물이 난 대단한 고장이에요. 1백6년 된 창평초등학교의 시초가 고정주 선생이 세운 창흥의숙인데 그곳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났지요.”
송희용씨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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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가 굵고 격식을 잘 갖춘 고씨 고택들을 돌아보고 나오니 은색 대문에 붙은 ‘창평쌀엿’이라 쓰인 간소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쌀엿으로 이어진다.
“창평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될 때 돌담뿐 아니라 음식 분야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었죠. 대한민국 음식명인 35명 중 네 명의 장인이 이곳 창평면 출신이에요.”
창평 쌀엿의 유영군 명인, 엿강정의 박순애 명인과 댓잎술의 양대수 명인이 있고, 그리고 창평 고씨의 10대손 종부인 기순도씨가 전통장류의 명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쌀엿은 양녕대군과 함께 이 마을에 들른 궁녀가 전수해 준 그때 그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원래 서른 가구쯤 쌀엿을 만들었는데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수익이 나지 않아 지금은 다섯 집밖에 남지 않았지요.”
실제 창평 쌀엿을 만드는 과정은 대단히 수고로운 일이다. 쌀을 불려 고두밥을 짓고 엿기름을 섞어 발효를 시키면 식혜가 된다. 이것을 7시간쯤 달이면 조청이 되는데 서너 시간쯤이 조청을 계속 달여 갱엿을 만든 후 여러 번의 늘리기 과정을 거쳐야만 쌀엿이 된다.
그러니까 쌀엿을 한 번 만들려면 꼬박 48시간 동안을 잠도 못자고 장작불 앞을 지켜야 한단다.
“쌀엿은 날이 더우면 만들 수 없어 농한기에 쉬엄쉬엄 만들지요.
그런데 요즘에 농한기가 따로 있나요. 엿 찾는 사람이 계속 줄어드는 것도 아쉽지요. 그래도 조부 때부터 3대에 걸쳐 만들어 온 것이라 그저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는 거지요.”
엊그제 만든 엿이라며 그가 내준 엿을 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촉감에 부드러운 단맛이 압안에 꽉 차게 번졌다. 그야말로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명품 엿이다.![]()
내친김에 장아찌 맛으로 소문난 문현정씨네 집에도 들렀다. 문현정씨는 시부모께 물려받은 돌담 한옥집에 살면서 장아찌를 만들고 있는데, 이 집 또한 1911년에 지어진 1백년이 넘은 고택이다. 마당을 가득 메운 수십 개의 항아리 속에서 그의 장아찌들이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익어 가고 있었다.
“화순이 고향이신 외할머니께 장아찌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만들 수 있는 건 한 80여 가지 되는데 판매는 서른 가지 정도 돼요.”
민박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 집에서 묵으면 그가 손수 담근 맛난 장아찌로 차려 낸 맛있는 아침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장아찌는 곰삭은 세월의 맛이에요. 시간이 지나야만 항아리 뚜껑을 열 수 있죠. 우리 마을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지요. 장을 치대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들러서 한 말씀씩 해 주세요. 장아찌는 그분들 목소리를 듣고 더 맛있어지죠.”
문현정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내온 도라지 효소차 한 잔을 들고 그의 집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몸에 좋다는 얘기에 도라지 뿌리까지 꼭꼭 씹어 먹는다. 쌉싸르하면서도 달큼한 차맛이 아주 마음에 든다. 고층건물도, 번듯한 상점도, 고급스러운 승용차도 없는 이 마을에서 오래 묵은 차 한 잔이면 부러울 것 없을 듯싶다. 장 담그고, 엿 만들고, 황톳물로 염색하고, 장아찌 담그는 순한 장인들이 살아가는 오래된 돌담이 있는 마을은 지금 그대로 족해 보였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담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넘나든다. 마을을 찾은 이방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바람이 말한다. 괜찮아, 조금 느려도 괜찮다니까.
글·고선영(여행작가) / 사진·김형호(사진작가)![]()
1999년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슬로푸드 운동을 벌인데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몇몇 도시의 시장이 모여 사람 중심의 마을로의 회귀를 선언했고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가 최초의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현재 전 세계 17개국 1백23개 도시가 가입돼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안 증도, 완도 청산, 장흥 유치, 담양 창편, 하동 악양, 예산 대흥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전통적인 수공업과 음식조리법이 보존돼 있고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키며, 자연친화적인 농법을 사용하는 것이 슬로시티가 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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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