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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이한우 기자의 역사 읽기 - 장원급제 동기 '시소' 행보

 

장원급제 동기 ‘시소’ 행보임금의 사랑을 받다가도 효를 위해 관직에서 물러난 어변갑(魚變甲)이 문과 장원을 차지했던 태종 8년(1408년) 무자 식년방에 나란히 급제한 두 인물이 있다. 신인손(辛引孫· 1384~1445)과 우승범(禹承範·?~1438)이다. 두 사람 모두 관리생활의 대부분을 인재를 잘 썼던 세종 밑에서 보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행로 비교는 오늘날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
 

둘은 모두 막강한 집안 배경을 갖고 있었다. 신인손은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신유정(辛有定)의 아들이었고, 우승범은 태종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고려 말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였다. 차이가 있다면 신인손이 아버지의 배경이 곧바로 큰 힘이 된 반면, 우승범에겐 정도전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우홍수(禹洪壽)의 신원(伸寃)이라는 개인적 문제가 있었다.
 

일단 초급관리 시절 관운은 신인손 쪽에 있었다. 신인손은 춘추관 사관으로 출발해 1413년에는 승정원 주서정(7품)이 되어 대군들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했다. 대군들이란 세자 양녕을 제외한 효령, 충녕(훗날의 세종), 성녕 등을 말한다. 세종과는 이렇게 일찍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반면 우승범은 운도 따르지 않았지만 일처리에 있어 잔 실수가 잦았다. 문과 급제 이듬해인 1409년 7월 예문관 검열(정9품)로 근무하던 중 태종이 올릴 기청제(祈晴祭) 때 사용할 제문(祭文) 준비를 소홀히 했다가 4일 동안 옥에 갇힌다. 1417년에는 이조 정랑(정5품)으로 있던 우승범이 이미 양녕의 음행과 관련해 주륙을 당한 구종지 등의 이름을 어람관안(御覽官案·임금이 보던 관리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은 죄로 의금부에 투옥된다. 게다가 세자의 학문연마를 책임지던 서연(書筵)의 관직까지 겸하고 있던 터라 우승범은 1418년 6월 양녕이 폐세자될 때 파직당한다.
 

세종 6년(1424년) 신인손은 오늘날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의정부 사인(정4품)에까지 올라 있다. 반면 1419년(세종 1년) ‘외척 제거’라는 구상에 따라 태종이 세종의 장인 심온을 제거할 때 심온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우승범도 함께 죄를 받아 파면당했다.
 

그가 세종으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는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세종 8년(1426년) 9월의 일이다. 사헌부 집의(정3품)였다. 총애를 받던 신인손이 집의에 오른 때가 2년 후인 세종 10년 10월이었으니 단숨에 역전된 것이다. 장인 심온의 억울함을 세종은 이렇게 풀어주려 했는지 모른다.

 


 

이후 신인손은 세종 12년 예문관 직제학(정3품 당하관), 세종 14년 7월 사간원 좌사간(종3품)을 거쳐 같은 해 12월 8일 공조 우참의(정3품 당상관)에 제수된다. 그런데 같은 날 우승범은 이조 우참판(종2품)에 제수됐다. 여전히 우승범이 한 발 앞섰다.
 

이듬해 초 신인손이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뛰어난 이재(吏才)를 발휘해 백성의 삶을 안정시켜 세종의 큰 신임을 얻는다. 세종이 황희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것도 황희가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 가뭄문제를 잘 해결한 때문이었다.
 

세종 16년 병조참의로 중앙에 복귀한 신인손은 그해 8월 승정원 우승지로 세종을 가까이에서 보필하게 되고 좌승지를 거쳐 이듬해(세종 17년) 3월 도승지에 오른다. 이후 세종 20년(1438년) 병조참판(종2품)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3년간 신인손은 세종의 혀가 되어 국가 중대사를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우승범은 이미 신인손보다 6년 빠른 세종 14년(1432년) 1월 병조참판에 제수됐고 같은 해 12월 이조 우참판으로 자리를 옮긴다. 부서를 돌며 참판만 했던 셈이다. 결국 판서직에는 오르지 못하고 세종 20년 10월 과음(過飮)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면 신인손은 병조참판으로 오랫동안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세종의 북방 개척을 실무적으로 도왔고 세종 26년 마침내 형조판서에 오른다. 두 사람을 통해 세종의 양재(養才)와 용인(用人)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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