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강원도 평창 여행의 출발은 월정사라는 대가람이다. 월정사는 가람의 장엄함만으로도 감탄스러운 곳이지만 일주문에서 가람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전나무숲길 역시 회색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사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지어진 고찰이다.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보름달 빛이 유난히 밝아 월정사라고 했다고 한다.
월정사는 한국 근대의 고승인 방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방한암 스님은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냈다.
일본 사토오라는 고승은 방한암 스님을 ‘세계에서 둘도 없는 인물’로 평가했다. 탄허 스님은 청년 시절 3년 동안 한암 스님과 편지를 나누다 제자가 된 선승이다. <화엄경> 1백20권을 번역·출간한 것을 비롯해 <화엄론> 40권, <육조단경>, <보조법어>, <사교>, <사집> 등 많은 저서를 냈다.
월정사에서 눈길을 줄 만한 것은 8각9층석탑이다. 17동이나 되었다는 법당은 한국전쟁 때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근세에 새롭게 세워진 사찰은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지만 당당함과 장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고려 초기에 세웠다는 석탑은 층층 모서리마다 쇠종을 달고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작은 쇳소리가 산을 울린다. 바람이 내는 종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길다.
월정사는 한국 제일의 ‘아름다운 숲길’을 가지고 있다. 주말과 휴일이면 도시의 소음에 시달린 수많은 여행객이 월정사 전나무숲을 거닐며 고요와 평화에 몸은 맡긴다. 금박 글씨의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붙은 일주문에 들어서면 숲길이 시작된다.![]()
숲길은 아름드리 거목 사이로 물처럼 흘러든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티끌 같은 망상과 잡념이 깨끗이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길이는 800미터 정도. 왼쪽으로는 상원사 앞을 지나 흘러온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숲길은 직선으로 반듯하게 뻗어 있지 않다. 이리저리 굽어 있다.
길의 초입에는 삭발탑이 서 있다. 아마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입산한 스님들에게 절에 들어올 때의 첫 마음가짐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탑일 것이다. 삭발탑을 지나면 장정 두어 명이 손을 잡아야 할 정도로 굵은 거목들이 서 있다.
전나무는 가지가 직각으로 뻗었을 뿐 아니라 길이도 짧다. 다른 나무들처럼 ‘Y’자로 가지를 펼쳐 큰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다. 다 자란 나무는 키가 30~40미터 정도 된다.
월정사 전나무는 아홉 수에서 시작됐다. 수령 5백 년의 전나무 아홉 그루의 씨가 퍼져나가 울창한 전나무 숲을 이뤘다고 한다. 숲길에선 초여름의 강한 햇빛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공기는 싱싱하고 상쾌하다. 걷다 보면 도토리를 쥔 다람쥐와 청설모들이 여행자의 뒤를 따른다.
월정사는 오대산 산사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월정사에서 출발해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돌아볼 수 있다. 상원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동종이 있다.
1천3백년 전에 만들어졌다. 높이 1.68미터, 구경 91센티미터, 무게 3천3백근에 달한다. 종에 새겨진 여러 문양이 우아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두 갈래, 세 갈래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상원사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적멸보궁은 오대산 산사 여행의 클라이맥스다. 겉치레를 하지 않은 자그마한 절에는 불상도 없다.
부처의 몸이 있기 때문이란 이유다. 하지만 적멸보궁이 감싸 안은 풍광은 광활하다. 뒤로는 비로봉이 호위하고 앞으로는 오대산의 육중한 능선이 펼쳐진다.
한국의 풍수학자들은 오대산 적멸보궁이 대단한 터에 자리 잡았으며 땅의 힘이 굉장하다고 평가한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적멸 보궁에 오르면 장쾌한 풍경에 속이 확 트인다. 이런 대단한 자리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승려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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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을 수식하는 캐치프레이즈는 ‘해피 700(Happy 700)’이다. 해피 700이란 해발 7백미터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고도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평균 고도가 7백미터인 곳은 평창과 태백뿐이다. 고원도시 평창의 면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여행지는 대관령삼양목장과 양떼목장이다.
6백만 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대관령삼양목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다. 선자령과 매봉, 그리고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허리에 위치한 대관령삼양목장은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의 길이만 22킬로미터에 달한다. 자동차로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30분이 걸린다. 비포장도로인 이 일주도로는 오프로드 마니아들에게 레이싱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대관령삼양목장의 드넓은 목초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 무대기도 했다. 이성재가 주연한 <바람의 전설>을 비롯해 장동건과 원빈이 주연한 <태극기 휘날리며>, 한석규의 <이중간첩>, 유오성의 <별>, 드라마 <가을동화> 등 숱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뒤편에 있는 양떼목장은 진영대씨 부부가 가꾸는 개인목장이다. 넓이는 6만2천여 평. 이곳에 양 2백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대관령목장이 광활함을 자랑한다면 양떼목장은 아기자기하다. 그네가 매어져 있는 나무를 지나면 산책로가 시작된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 안에서는 양들이 20~30마리씩 모여 노닌다. 20여 분 천천히 오르면 언덕 정상에 닿는데, 벤치 하나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잠깐 쉬어갈 수도 있다. 벤치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막힘이 없다. 멀리
평창 읍내가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한국자생식물원에도 꼭 들러보자. 오로지 토종 우리 꽃과 나무만으로 꾸며놓은 식물원이다. 1만여 평에 달하는 우리 꽃 재배단지에서 철마다 대단위로 키워내는 꽃이 시원하게 눈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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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생식물원은 사람명칭식물원, 동물명칭식물원, 향식물원, 독성식물원, 희귀·멸종위기식물보존원 그리고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군락지(재배단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명칭식물원에는 애기나리, 처녀치마, 홀아비꽃대, 할미꽃 등을 모아놓았고, 동물명칭식물원에는 범부채, 노루귀, 병아리꽃나무, 노루오줌 등 동물이름이 들어 있는 식물을 심어놓았다. 두 곳을 돌아보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꽃이름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신갈나무 숲길을 따라 도는 30분짜리 산책코스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글과 사진 최갑수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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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