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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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얼차려, 집합, 점호…. 군대생활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꽤 많다. ‘복종’과 ‘서열’이 절대적이었던 예전의 병영생활은 획일적인데다 폐쇄성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획일성보다는 개인의 개성을 살려주고 사회와 소통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군대 참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B]1~2주 걸려 배달됐던 아들의 편지[/B]
자식을 군대에 보내 놓고 걱정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훈련은 힘들지 않은지, 잘 먹고 잘 지내는지 등 모든 게 궁금하다. 통신망이 변변치 않던 시절 ‘편지’를 제외하고는 딱히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편지를 받아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부모의 마음을 태웠다. 최전방에서 집까지 1~2주씩이나 걸렸던 편지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어긋나게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방에서 잔뜩 먹을 것을 싸들고 왔던 어머니는 아들이 ‘작전 중’이라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위병소 앞에는 어머니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은 신병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는 인터넷 클릭 한번으로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싸이월드’ 등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아들의 군 생활 전모도 엿볼 수 있다. 부모는 게시판을 통해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 쉽게 면회를 오지 못하는 부모님과 친구를 위한 ‘화상면회시스템’까지 등장했다.
[B]‘페치카’에서 ‘보일러’로 군 내무반 온기 가득[/B]
각 잡힌 모포, 똑같은 패턴으로 정리정돈된 관물대…. 1960~70년대 군 내무반은 ‘군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구타도 일부 허용됐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당시 이름표만 떼면 누구의 물건인지 모를 정도로 내무반의 모든 물건은 획일적으로 놓여 있었다.
일석점호시간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관물대가 있으면 곧바로 ‘얼차려’로 이어졌다.
병영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무와 석탄을 페치카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절, 새벽이면 열기가 사그라진 페치카로 인해 덜덜 떨어야만 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밤에 몰래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병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요즘 내무반의 침상은 2층 침대 구조로 바뀌었다. 섬뜩했던 일석점호도 자율점호로 바뀌는 추세다. 페치카도 기름보일러로 교체돼 ‘고참’자리에서 신병 자리까지 온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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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웨이트 트레이닝 룸, 찜질방 등 다양한 병영문화 확산[/B]
1970~80년대 무렵 부대 내의 휴일 풍경은 단조로웠다. 종교활동, 체력단련, 축구시합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체력단련도 기껏해야 ‘평행봉’ ‘철봉’이 전부였다. 놀이문화가 전무했던 시절 “누가 평행봉을 더 잘 타나”에 내기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휴일 풍경은 전혀 다르다. 독서, PC게임, 사물놀이, 당구, 음악, 댄스 그리고 찜질방까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다.
[RIGHT]최재영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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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