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봄 여행지로 영덕만한 곳이 없다. 골짜기마다 폭죽이 터지듯 복사꽃이 핀다. 숨을 들이마시면 달짝지근한 복사꽃 냄새가 가슴 가득 차오른다. 바다에서는 살이 꽉 찬 대게가 난다. 바다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즐기는 봄바다 드라이브는 또 어떤가. 바다 위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보며 산길을 걷는 달빛 산행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 준다.
5월이면 영덕에 복사꽃이 핀다. 무릉도원을 이룬다. 안동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34번 국도를 따라가다 황장재를 넘어서면 지품면에 닿는데,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을 따라 복사꽃밭이 이어진다.
강변의 평평한 밭고랑은 물론 산비탈의 계곡까지 연분홍 복사꽃이 가득하다.
복사꽃 필 무렵이면 이곳 아낙들의 손길도 무척 바빠진다. 복숭아 씨알을 굵게 하려면 일일이 손으로 복사꽃을 솎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건을 머리에 두른 수십 명의 아낙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잎을 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장관이다.
영덕이 원래부터 복사골은 아니었다. 논과 밭뿐인 평범한 시골이었다. 하지만 1959년 사라호 태풍이 휩쓸고 가면서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장비가 없어 쏟아져 내린 토사를 걷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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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척박한 토질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복사나무를 생각했고 모래가 많이 섞이고 물이 잘 빠지는 토질 때문에 복숭아 수확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복사꽃은 영덕대게와 함께 영덕관광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덕읍에서 옥계 유원지로 가는 69번 지방도의 달산면 일대도 온통 복사꽃 천지다. 오십천 지류인 대서천을 거슬러 오르면 옥계계곡 조금 못 미쳐 옥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의 복숭아밭도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 하늘을 떠받치듯 양팔을 벌린 모습의 검은 가지에
열을 맞춰 탐스럽게 매달린 복사꽃은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다.
복사꽃을 본 후 강구항으로 간다.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집산지다. 복사꽃이 피는 무렵은 영덕대게도 제철이다. 대게 철이면 강구항은 이른 아침부터 활기가 넘쳐난다. 수협공판장은 아침부터 어선들이 실어온 대게로 가득하다. 대게를 앞에 두고 경매인과 중매인이 벌이는 눈치작전이 보는 이마저 긴장감에 젖게 한다.
대게는 몸집이 크다고 해서 대(大)게가 아니라 다리모양이 대나무처럼 곧고 마디가 있어 대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영덕대게는 다리가 길고 속살이 꽉 차 있을 뿐 아니라 맛이 쫄깃해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되었다고 한다. 게를 싼값에 먹으려면 굳이 대게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보다 저렴한 홍게(등딱지와 다리가 붉은 게)를 먹어도 좋다. 동해안 심해에서 서식하는 홍게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 맛있다.
강구항에서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918번 지방도로는 봄철 동해와 고기잡이 마을의 정취를 흠뻑 즐길 수 있는 해안도로 드라이브코스. 약 35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길을 따라 금진리, 하저리, 대부리, 창포리, 대탄리, 오보리, 노물리, 석리, 경정리 등 동해와 맞닿아 있는 아담한 갯마을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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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가까운 짙푸른 해안에는 소라와 전복을 따는 해녀들의 물질이 한창이고, 도로 주변에는 바다에서 갓 따낸 돌미역과 오징어, 가자미들이 따사로운 봄볕에 말라 간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가까운 바다에서 물결 따라 흔들리는 검은 점들을 볼 수 있다. 전복, 해삼, 멍게를 건져 올리는 해녀들이다. 오리발을 신은 두 다리를 물 위로 힘차게 뻗으며 자맥질해 들어가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길의 중간 지점에 해맞이 공원이 있다. 높은 바닷가 깎아지른 절벽에 눈부시게 하얀 등대가 서 있다.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고 간이 찻집도 있다. 아침이면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렌지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구경할 수 있다. 바다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다.
최근에 강구항을 출발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50킬로미터 도보해안길인 ‘영덕블루로드’ 코스가 개통되었다. 하지만 코스가 너무 길어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석리어촌마을에서 축산항까지 6.7킬로미터 해안길을 골라 걸어볼 만하다. 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을 지나 축산항까지 쉬엄쉬엄 걸으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달맞이 야간산행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해지기 한 시간쯤 전에 창포초등학교를 출발해 삿갓봉과 풍력발전사무소를 거쳐 영덕해맞이공원에 오른 뒤 온 길로 하산하는 코스. 약 6.7킬로미터,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산행로 일부 구간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 평탄한 길이라 슬리퍼를 신은 채로도, 건장한 아버지라면 아이를 무동 태운 채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한 시간가량 쉬엄쉬엄 걷다 보면 달빛을 받아 빛나는 밤바다를 볼 수 있다. 수평선에 걸린 눈부신 어화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감탄하며 걷다 보면 어디선가 ‘웅~ 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풍력발전단지다. 24기의 거대한 발전기가 달빛 아래 우뚝 서 있다.
강구항 북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창포리에 풍력발전단지가 세워진 것은 2005년 3월. 1997년 영덕읍 우곡리에서 큰 산불이 났는데 불은 창포리까지 번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산불은 마을 앞에서 딱 멈췄고 나무를 베어낼 필요 없이 풍력발전소가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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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리 발전단지에 들어선 발전기는 모두 24기. 제주도 세화리에 풍력발전기가 있지만, 그것보다 큰 규모다. 하나의 크기가 기둥 높이 80미터, 양 날개의 길이가 82미터에 달한다. 이 바람개비들에서 1년에 9만6천6백80메가와트의 전기가 생산된다. 영덕군이 1년간 쓸수 있는 양이다. 아래에서 발전기를 보려면 목을 뒤로 90도 가까이 젖혀야 한다.
풍력발전단지는 낮에 찾아도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 높은 발전기들은 이국의 정경을 만들어낸다. 발전기 사이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나 있어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도 있다. 낮에는 관광버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발전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그냥 발전기 사진만 찍기도 한다. 넓은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서 커다란 날개를 휙휙 돌리는 발전기의 모습은 분명히 신기한 볼거리임이 분명하다.
영덕에서 꼭 들러야 하는 해변이 있다. 고래불 해변이다. 장장 8킬로미터나 뻗어 있다. 아침 먹고 한쪽 끝에서 출발해 돌아오면 점심녘이다.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삼사해상공원에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게잡이를 재현해 놓은 인형과 각종 어선의 모형, 어구 등을 전시해 놓았다.
글과 사진·최갑수(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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