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009~2010 프로농구가 10월 15일 막을 올렸다. 정규리그는 총 2백70경기로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10개 팀 중 상위 6개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 결정전 진출자를 가린다.
농구 전문가들은 지난해 챔프전에서 격돌했던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고 있다. 이 팀들이 올해 초 실시한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에서 종전의 약점을 메울 수 있는 좋은 선수들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이 드래프트에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선수들이 귀화를 전제로 참가했다. 한국농구연맹(KBL)이 ‘보는 재미’를 더하고,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실시한 첫 드래프트였다.
KCC는 전태풍(29·가드)을 선발해서 약점이었던 포인트가드를 보강했다. 삼성은 이승준(31·포워드)을 뽑아서 높이의 약점을 메웠다. 전태풍과 이승준은 뛰어난 기량으로 돌풍을 준비하고 있는 어엿한 한국인이다. 이들을 포함해 올해 ‘귀화 혼혈 드래프트’에서는 총 5명의 선수가 선발됐다. 그리고 이미 지난 시즌 이승준의 동생인 이동준(29·오리온스)과 ‘아르헨티나 특급’ 김민수(27·SK)가 다문화 스타로 미리 자리매김했다. 한국 남자농구는 본격적인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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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프로농구에서 뛰는 다문화 선수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미리 귀화한 뒤 대학을 거쳐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한 이동준, 김민수는 ‘대학파’에 속한다. ‘귀화 혼혈 드래프트’를 거쳐 곧바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들도 있다. 전태풍과 이승준을 비롯해 문태영(31·LG), 박태양(23·KT), 원하준(29·KT&G)까지 총 5명이다.
김민수는 2002년 ‘대학 다문화 선수 1호’로 화제를 모았다.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김민수는 고무공 같은 탄력을 갖춘 포워드다.
경희대 재학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이동준은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연세대를 거쳤다. 김민수와 이동준은 지난 시즌 프로무대에서 신인으로서 큰 활약을 보였다.
이동준의 형이자 당초 이동준보다 한 수 위의 실력으로 주목받았던 이승준은 2007년 모비스에서 외국인 선수로 뛴 적도 있다. 삼성에 입단하면서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한 명 더 뛰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화제를 모았다. 전태풍은 “한국 농구에 태풍을 몰고 오라는 뜻으로 사촌동생이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다. KCC의 라이벌인 삼성의 안준호 감독마저 “그야말로 태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승준은 호쾌한 덩크슛이, 전태풍은 다이내믹한 공격력이 장점이다.
다문화 선수들의 코리안 드림에는 ‘어머니’가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정착하는 게 이들의 공통된 꿈이다. 다문화 선수들은 한국 이름을 지을 때 어머니 성(姓)을 따랐다.
김민수의 어머니 김윤숙(56) 씨는 지난해 9월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김민수는 “꿈이 이뤄졌다. 더 열심히 뛰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세 아들을 키웠다. 과거 정육점에서 일하던 도중 왼쪽 손가락이 거의 잘려나가 한쪽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김민수는 2006년 한국 대표팀에 처음 뽑혔을 때 대표팀 유니폼을 아르헨티나의 어머니에게 보냈고, 어머니는 태극마크가 선명한 아들의 유니폼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들 모자는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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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동준 형제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미국 시애틀에서 한국식당을 하는 어머니 이점옥(57) 씨 덕분에 이들 형제는 매운 한국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이승준은 왼쪽 팔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산에 오르는 문신을 새겼다. “호랑이는 나와 동준이고, 산에 오르는 것은 한국에서 꼭 성공하겠다는 의지”라는 설명이다.
원하준은 한국팀을 선택한 게 바로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 헤어져 얼굴도 모른 채 이름만 알고 있는 어머니를 수소문해봤지만 결국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어머니가 10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KT&G 관계자들은 원하준의 안타까운 ‘사모곡’에 함께 가슴 아파했다.
이번 시즌 코트를 누비는 다문화 선수들이 단지 생김새가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각 구단들은 남다른 운동능력과 신체조건을 지닌 데다 개인기가 뛰어난 이들을 전력의 핵심으로 여긴다. 또 KBL은 이들의 개인 스토리와 농구 실력이 프로농구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문화 선수들은 대부분 아직 한국말이 서툰 데다 한국식 위계질서와 조직문화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데 힘겨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들의 서툰 한국말 때문에 팀에서는 폭소가 터질 때도 있다. 존댓말을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탓에 ‘감독님’이 아니라 그냥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라고 인터뷰하는 선수를 보고 구단 관계자가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하루 4, 5시간씩 한국어 책을 붙들고 있는 전태풍도 여전히 한국어 인터뷰가 힘겨워 영어를 섞어서 말한다. 이동준은 “미국에서는 즐기기 위해 농구를 했는데, 때로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농구만 하는 한국 동료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꿈을 꾸면서 한국무대에서 뛰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구 코트 위에서 뛰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이승준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돼서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미경(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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