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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를 껴안은 통영은 미항(美港)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수사가 빠지지 않을 만큼 통영항 일대의 풍경과 정취는 아름답다. 통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항(藝港)으로도 유명하다. 통영항 북쪽에 불끈 치솟은 여항산의 북포루나 동호항 옆의 남망산공원 팔각전망대에 올라서면, 아무리 가슴 메마른 사람도 감수성이 저절로 용솟음칠 만큼 서정적인 통영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탁월한 서정미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깃발>의 시인 유치환과 극작가 유치진 형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와 대표작 <봉선화>로 잘 알려진 시조시인 김상옥,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전혁림 등을 낳았다.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오랫동안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던 군항(軍港)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에 처음 설치됐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초대 통제사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거제, 여수 등으로 옮겨졌던 통제영은 1604년에 다시 통영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통영에는 세병관, 충렬사, 착량묘 등과 같이 옛 통제영이나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여럿 남아 있다.
 

통영 곳곳에 산재한 충무공과 옛 통제영의 자취도 더듬어보고, 통영이 낳은 예술가들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 코스가 최근 개설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문화생태 탐방로 중 하나인 ‘토영 이야~길’이 그것이다.

‘토영’은 통영 토박이들이 통영을 일컫는 사투리 발음이고, ‘이야’는 언니나 형을 부를 때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부를 때 애칭으로도 쓰이는 통영 사투리다. 게다가 긍정적 의미가 내포된 감탄사이기도 하다.

토영 이야~길은 두 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에서는 옛 통제영터를 중심으로 한 통영 시내 고샅길과 거리를 두루 섭렵하면서 여러 예술가들의 자취와 문화유적을 살필 수 있다. 통영운하 건너편에 위치한 미륵도 북부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는 2코스는 바닷길, 산길, 마을길 등을 걸으며 박경리, 전혁림 등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1코스를 걸어봤다. 1코스는 완벽한 도심문화 탐방로라는 점에서 기존 코스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도심 한복판을 출발해서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다.

1코스는 거북선이 정박해 있고 충무김밥집들이 늘어선 강구안의 문화마당에서 시작된다. 통제영 시절에 병선(兵船)이 정박했던 곳이어서 ‘병선마당’으로도 불린다.

길은 처음부터 미로 같은 골목과 사통팔달로 뻗은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이어진다. 아직 이정표나 안내지도조차 없어 목적지의 순서대로 현지 주민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설령 길을 잘못 들었다 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대체로 목적지는 1백 미터 이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강구안 문화마당 건너편의 버스정류장 옆에는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을 새긴 시비가 서 있다. 충무김밥집 거리를 지나자마자 금세 초정거리에 들어선다. 시조시인인 초정(艸丁) 김상옥의 생가가 있던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초정거리에서 큰길을 건너면 이내 청마거리다. 그곳에 청마 유치환이 정인(情人) 이영도에게 무려 5천여 통의 편지를 붙였다는 통영 중앙동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앞에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되는 청마의 시 <행복>을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청마거리가 끝날 즈음 만나는 사거리 한 모퉁이에는 ‘통영 문화동 벅수(중요민속자료 제7호)’가 서 있다. 주민들이 마을의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1906년에 세웠다고 한다. 돌벅수 앞 비탈진 길을 조금 오르면 세병관 입구다.

정면 9칸, 측면 5칸 규모의 세병관(국보 제305호)은 옛 통제영 객사로 쓰인 건물이다.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위용이 인상적이다.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목조 건축물로 손꼽히는 세병관의 현판 글씨는 한 자의 높이가 무려 2미터에 이른다. 세병관 주변의 많은 관아 건물과 통제영성은 모두 없어졌다가 최근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통해 하나둘씩 옛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병관 앞에는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통영향토역사관이 있고, 위쪽에는 옛날 통제사의 집무실이던 운주당이 있다. 세병관 서쪽 간창골에는 오래된 우물과 근대문화유산 건물인 통영문화원이 있다.

통영문화원에서 서문고개를 넘고, 박경리 생가와 두석장 김덕룡의 옛집,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가 살았던 곳을 차례로 둘러본 다음 충렬사(사적 제236호)에 도착한다.

통영시 명정동 산비탈에 자리 잡은 충렬사는 충무공을 모신 사당이다.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8년 뒤인 1606년 제7대 통제사이자 충무공의 부하였던 이운룡이 왕명에 따라 세웠다. 그 뒤로 통제영이 폐지될 때까지 2백91년 동안 매년 봄과 가을에 통제사의 주관 아래 제사가 올려졌다.





 

충렬사 경내 유물전시관에는 충무공의 전공을 높이 산 명나라 신종이 보낸 팔사품(보물 제440호)이 전시돼 있다. 팔사품은 도독인, 호두령패, 귀도, 참도, 독전기, 남소령리, 홍소령기 등 8종 15개의 군의장물(軍儀仗物)로 구성돼 있다.

충렬사 앞에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정당샘이 있다. 조선 현종 11년(1670년)에 제51대 통제사 김경이 충렬사의 제향에 쓰기 위해 판 우물이다.

위쪽 것은 일정(日井), 아래쪽 것은 월정(月井)이라고 부른다. 두 샘의 일(日), 월(月) 자를 합쳐서 ‘명정(明井)샘’으로도 불린다. 지금도 맑은 샘물이 솟아나지만, 상여가 가까이에 지나가거나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에는 물빛이 저절로 탁해진다고 한다.
 

정당샘에서 통영 해저터널로 가는 길에는 왕명으로 세워졌다는 함안 조씨 정문(旌門), 1917년 통영에 처음으로 전기를 공급했던 자리인 전기불터, 서피랑 입구의 옛 통제사 순찰길, 통영의 대표적 간식거리인 오미사꿀빵, 옛 통영군청 건물이자 근대문화유산인 페스티발하우스, 윤이상기념관이 있는 도천테마공원 등을 두루 거치게 된다.

동양 최초이자 우리나라 유일의 해저터널인 통영 해저터널은 통영 시내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물목인 착량의 바닷속을 가로지른다. 임진왜란 당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선들이 이곳을 물길로 착각하고 들어왔다가 배가 갈 수 없게 되자 급히 땅을 파고 물길을 내어 도망쳤다는 곳이다. 그래서 ‘판데목(착량·鑿梁)’이라고도 하고, 왜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던 곳이라 해서 ‘송장목’ 또는 ‘송장나루’라고도 불린다.

일제는 자신들의 선조들이 죽은 물목 위로 조선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해저터널을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 4백61미터, 너비 5미터, 높이 3.5미터 규모의 이 해저터널은 1927년 5월부터 5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이 터널은 한동안 미륵도와 통영 시내를 잇는 유일한 교통로로서 사람과 차량이 오갔으나 1967년 충무교가 완공된 뒤로는 인도로만 활용되고 있다.

착량 인근 언덕바지에는 충무공의 여러 사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착량묘(鑿梁廟)가 있다.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사망하자 이듬해인 1599년 그의 충절을 잊지 못한 통영 주민과 수군들이 초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지금도 해마다 충무공의 기일(忌日)인 음력 11월 19일에는 기신제를 올리고 봄과 가을에는 향사를 봉행한다.

착량묘를 둘러본 뒤 수산물이 풍부한 서호시장, 강구안의 병선마당, 화가 이중섭이 1953년 통영에 머물 당시 작품 활동을 했던 곳과 바다 전망이 좋은 남망산공원, 김춘수 생가와 내력 깊은 우물인 통새미를 지나면, 요즘 통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급부상한 동피랑마을에 들어선다.

동피랑마을의 골목과 담, 지붕에는 소박하고도 정감 넘치는 벽화들이 가득하다. 그 벽화가 철거될 처지에 놓인 달동네를 살려냈고, 이제는 날마다 수백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통영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피랑마을의 골목길을 쏘다니며 따뜻한 인정을 나누고 빛바랜 추억을 되살린다.

동피랑마을 아래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다시 강구안 문화마당으로 들어서면 탐험 같았던 토영 이야~길 1코스의 알차고도 빠듯했던 여정이 마무리된다. 길은 복잡하고 도시는 분주해도 한나절간의 짧은 여행이 주는 여운은 의외로 길게 남는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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