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줄라이홀’이라 이름 붙인 문이 보였다. 슬그머니 문을 밀고 들어가자 족히 몇 만장은 넘어 보이는 LP판과 여기저기 쌓여 있는 책, 음향기기 그리고 천장에 빼곡히 붙어 있는 음향 분산재들이 눈에 띄었다. 세상과 차단된 은밀한 아지트 같은 이곳은 시인, 문화평론가, 음악칼럼니스트, 출판평론가, 방송인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닌 김갑수(51) 씨의 작업실이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인 이 작업실에서 그는 음악과 책을 통해 “다양한 내적 고민을 거쳐 근원적인 지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다. 영국에서 작가 겸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피터 케이브가 지은 이 책은 33가지의 철학 퍼즐이 담긴 실용 철학서다.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강은 똑같지만 강물은 다르다?’ 등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철학적 명제들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왜’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하는 의문만 들 뿐 확실한 정답을 얻긴 힘들다. 김 씨는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며 “책을 읽는 다양한 이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인 ‘생각하는 것’, 즉 ‘사유 행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인터넷, TV 등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취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불편한 책입니다. 한 챕터를 읽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결론도 내릴 수 없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똑떨어지는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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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네가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챕터를 예로 들면서 “인간이 갖는 ‘자유’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에는 무슬림인 자히라가 이웃집 여자 맨디의 일광욕 하는 모습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례가 등장한다. 그러나 자히라가 맨디에게 어떤 대단한 위해를 입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가치와 규범 중 어떤 것을 믿고 따르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답 없는 철학 퍼즐을 하나둘씩 생각하며 풀어가다 보면 수많은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복잡하고 정의 내릴 수 없듯이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고 철학하는 태도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달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글·김민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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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