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도심은 내사산(內四山), 즉 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에 에워싸인 형국이다. 그중 가장 높은 것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에 솟은 북악산(3백42미터)이다. ‘백악산(白岳山)’으로도 불리는 북악산은 산세가 좌우 균형을 이루고 가운데 부분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마치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닮았다. 최근까지 북악산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왔다. 조선시대에는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진산(鎭山)이었고, 현재는 청와대의 뒷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악산 능선과 산등성이에는 총 19킬로미터의 북악스카이웨이(북악산길)가 개설돼 있다.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사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자하문)과 정릉 아리랑고개 사이의 가파른 산허리와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관광도로다. 1968년 9월 개통된 이 도로는 주변 풍광과 전망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서울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인기가 높다.
특히 북악스카이웨이의 최고점에 조성된 팔각정공원에서 바라보는 서울 도심의 야경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또한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비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의 바위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악스카이웨이의 찻길 옆으로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개통된 뒤로 37년 동안이나 자동차를 타고서만 지날 수 있었던 길이 마침내 누구나 느긋하게 걸어볼 수 있는 길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 산책로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는 통행이 제한된다.
북악산길 산책로는 성북구 구간 3.2킬로미터, 종로구 구간 3.8킬로미터를 합해서 총 7킬로미터에 이른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도가 거의 비슷해서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상관없지만, 성북구 쪽에서 출발해 종로구의 창의문 방면으로 내려서는 것이 무난하다.
성북구 쪽의 시작점인 성북구민회관과 지하철 4호선의 삼선교역 사이에는 마을버스(1번)가 수시로 운행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종로구 쪽의 산책로 시작점과 창의문 사이의 능금나무길 주변에는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를 기념하는 환기 미술관(02-391-7701),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산모퉁이카페(02-391-4737), 도심 속의 심산유곡인 백사실계곡 등이 있어서 산책 후의 피로감을 씻어내기에 좋다.
북악산길 산책로는 경사가 매우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게다가 숲이 울창해서 녹음 우거진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 터널을 지나게 된다. 애초 길의 폭이 좁거나 경사진 곳에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있어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또한 길의 중간에는 정자, 벤치 등의 편의시설과 각종 운동기구가 놓여 있어 휴식하기에도 좋다. 무성한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아파트숲도 이 길에서는 삭막하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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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2, 3회 정도 이 산책로를 걷는다는 염정희(59) 씨는 “바로 옆에 찻길이 있어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에는 좀 어수선하긴 해요. 하지만 공기도 맑고 무릎관절에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어서 한번 걷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기분도 아주 좋아져요”라며 북악산길 산책로의 매력을 강조했다.
북악산길 산책로 주변의 명소로 길상사(02-3672-5945)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길상사는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의 말사지만, 원래는 1960~80년대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로 꼽히던 대원각이었다. 분단 이후 북한으로 간 시인 고(故) 백석(1912~1995)을 사랑한 고(故) 김영한 여사가 1997년 자신이 소유한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시켰다. 법정스님으로부터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은 김 여사는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뒤인 1999년 세상을 떴다. 그런 내력을 간직한 길상사는 절이라기보다는 규모 큰 살림집이나 별장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절 특유의 경건함과 고즈넉함이 살아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케 해준다.
북악산길 산책로의 종로구 쪽 출발지이자 종점인 창의문 아래 길가에는 늠름한 자태의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1·21사태’ 당시 순직한 고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다. 1968년 1월 21일 발발한 1·21사태는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사건이다.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은 국군 복장에다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했다.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이던 최규식 경무관은 청와대로 진입하던 무장공비들을 가로막고 검문을 벌이다 총에 맞아 숨졌다. 이처럼 북악산길과 그 주변에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와 사연들이 발길 닿는 곳곳마다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그 길의 여운은 실제 거리보다도 훨씬 더 길게 남는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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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