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090928호

‘봉달이’ 이봉주의 특별한 은퇴식




 

최근 은퇴를 공식 선언한 마라토너 이봉주(39)가 10월 대전에서 열리는 제90회 전국체전에 참가해 마지막 열정을 태운다. 2001년 제 105회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의 은퇴 경기로서 전국체전은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봉주는 “고향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봉사”라며 오늘도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은퇴를 앞두고 소속사 삼성은 이봉주에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국내외 최고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에서 완주한 뒤 은퇴식을 여는 방안과 전국체전 출전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이봉주는 “고향이 충남 천안 성거읍인데, 지금까지 국제 경기에 참가하느라 고향을 위해서는 한 게 별로 없다. 그래서 10월 체전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전할 생각”이라면서 “우승이나 기록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준비했구나, 참 잘 뛰었구나 하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대회. 기록도 의미 없다면 나태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봉주와 ‘태업’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 다른 별명이 ‘성실맨’인 이봉주는 요즘 10월 21일 레이스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30킬로미터 이상을 뛴다.
 

현재 수원과 공주를 오가며 훈련 중인 그는 해가 정점에서 내려온 오후 3시면 어김없이 훈련을 시작한다. 젊을 때라면 몰라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일 30~40킬로미터를 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봉주는 “젊을 때보다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기회는 이제 한 번 뿐이다. 어느 때보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크다”고 열의를 보였다.
 

한국 육상은 이봉주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세운 풀코스 마라톤 40회 완주(42회 도전)는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1990년 전국체전 당시 약관의 마라토너 이봉주는 생애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때 기록이 2시간19분15초.
 

이후 그는 199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시간8분 벽을 깼고(2시간7분44초), 같은 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 1999년 삼성전자로 팀을 옮긴 그는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또 한 번의 한국 신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우면서 ‘국민 마라토너’로 우뚝 섰다.

 


 

그의 마라톤 인생 하이라이트는 2001년 보스턴 마라톤. 1947년 서윤복 선수 이래 반세기 만에 그는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게 그의 마지막 메이저 타이틀이었다.
 

최근엔 그의 이름을 딴 마라톤대회도 열렸다. 현역 육상선수 이름을 딴 달리기 대회는 이례적이다. 9월 13일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인근 도로에서 열린 ‘제1회 이봉주 흥타령 마라톤대회’에는 전국에서 5천여 마라톤 동호인들이 참가했다. 그는 참가 시민들과 10킬로미터를 함께하며 호흡을 골랐다.
 

이봉주는 “여러모로 뜻 깊은 대회였다.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뛰었다. 조카와 큰아들 우석(7)이가 5킬로미터를 완주했고, 작은아들 승진(6)이는 절반 정도 뛰었다. 걷다 뛰다 하면서 겨우겨우 완주했지만, 우석이가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어찌나 기뻐하던지, 지금도 밖에 나갈 때면 메달을 목에 걸고 나간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향의 영웅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응원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됐다. 그는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손도 잡아주시고, ‘파이팅’ ‘힘내라’ 등 응원도 해주셨다. 앞으로 은퇴한 후에도 이런 생활마라톤에는 가끔 가족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라며 즐거워했다.
 

이봉주가 은퇴하면 한국 육상에서는 마지막 남은 스타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는 “나도 불쑥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며 “두려움은 없다. 뭘 하든 여태껏 해온 것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은퇴 후 이봉주는 한국 육상의 새 스타를 키우는 게 목표다. 그는 “마라톤 엘리트를 발굴하고 지도하기 위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앞두고 걱정도 많다. 최근 젊고 잘 뛰는 청년들이 마라톤을 기피한다는 것도, 재목을 만났다 해도 자신의 손으로 마라톤 스타를 키워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마라톤에 적합한 인재들은 여전히 많지만 요즘 젊은 선수들은 힘든 육상 대신 축구나 야구, 골프 등 인기 스포츠로 빠지려고 한다”며 “마라톤이 다시 살기 위해서 인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의 남은 바람은 ‘좋은 지도자’다.
 

“앞으로 한국 마라톤 발전을 위해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이론 공부를 열심히 한 후 내 경험을 살려 후배 양성에 힘쓰고 싶어요.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글·온누리(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