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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27호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삶에 전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낯빛은 누렇고 눈알은 벌겋다. 활력은 일상에서 거둘 수 있는 게 아니다. 되레 활력은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문득 찾아온다. 그래서 여행이란 걸 떠나는 건지 모르겠다.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집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여행이란 어쩔 도리 없이 지친 일상을 북돋우려는 안간힘이라는 씁쓸한 진실을 무연히 가리킨다.
 

염전을 다녀왔다. 아니 길 위에 있다가도 염전이 보이면, 저 멀리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염기가 실려 오면 서해안 갯마을의 소금밭으로 핸들을 돌린다. 막막한 평야 앞에서, 오로지 시간만이 군림하는 듯한 이 먹먹한 풍경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다 돌아온다. 소금밭에 소금이 알알이 맺힐 무렵 내 눈에 조용히 눈물이 맺히고, 찌든 노동으로 단련된 염부들이 군동작 하나 없이 부지런히 소금을 거둘 때 처져 있던 내 팔과 다리에도 힘이 붙는 걸 느낀다. 염전은 여행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바로 그곳이다.
 

전남 신안군 증도. 신안군에 속한 1천4개 섬 중 하나다. 주민 수 2천명이 겨우 넘는, 서해안의 조그맣고 외진 섬이다. 증도는 여전히 작지만 이제 더 이상 외진 섬은 아니다. 증도는 섬 어귀에 떡하니 자리잡은 염전 하나로, 다시 말해 소금 하나로 명소로 거듭났다.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선정됐고, 염전과 소금창고는 문화재로 지정됐다.

 

염전은 갯가의 평야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전은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바다에 모든 생산의 바탕을 맡긴 채 광활하고 아득하다. 염전은 속수무책의 평야인 것이다. _ 김훈, ‘시간이 흐르는 밭’, <자전거여행 2> 110쪽

 

한낮의 염전은 적요하다. 광활한 대지 위에 반듯이 구획된 소금밭이 가지런히, 오른쪽 지평선에서 왼쪽 지평선까지 거침없고 중단 없이 놓여 있을 뿐이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지금은 소금장인이라 불리는 염부도 한낮엔 밭에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게 정지된 듯한 풍경. 하나 염전에 갇혀 있는 바닷물은 제 몸에서 물을 빼느라 해종일 바쁘다. 염전에선 바닷물이 증발해 소금이 맺힐 때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알알이 맺힌 소금 알맹이는 “꽃”이라 부른다. 소금꽃이다. 염전은 소금밭이다. 갯가에서 일하고 바다에서 생산물을 거두지만, 갯것을 잡거나 기르는 건 또 아니다. 사람이 공을 들여 바닷물을 만지고 보살펴 농사를 짓는 일이다. 소금 농사 말이다.

 

한여름 신안 증도 태평염전에 가서

한 염부의 작업복에 핀 소금꽃을 보았습니다.

소금 농사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그래서 소금을 사람이 만든다고 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말하던 그가

(중략)

소금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_ 김선태, ‘염화’부분

 

증도에 있는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염전이다. 4백62만 제곱미터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 크기다. 1953년 6·25전쟁 직후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갯벌을 일궈 소금밭을 만들었다. 2006년 슬로시티 실사단이 증도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태평염전을 바라보며 “신이 키스한 곳”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태평염전은 공장 직원이 50여 명이고 염부가 1백50여 명이다. 염전에서 수확한 소금을 정제하고 가공하는 곳이 공장이다. 소금은 간수를 많이 뺄수록 상품(上品)이다. 3년 숙성 천일염이란 말은 3년간 간수를 뺐다는 얘기다.
 

염전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큰 저수지에 바닷물을 담아놓는다. 이어 갯고랑을 내 칸칸이 나누어진 증발지에 차례로 물을 옮긴다. 염전에선 이 과정을 “물을 꺾는다”고 한다. 언뜻 평평해 보이지만 증발지마다 3센티미터의 높이차가 있다. 저수지 쪽이 가장 높고 결정지에 가까울수록 낮아진다. 소금을 수확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결정지뿐이다.
 

물을 많이 꺾을수록 소금이 좋다. 더 많이 햇볕과 바람에 노출돼 있어서다. 하나 물을 많이 꺾으려면 염전이 커야 한다. 태평염전은 모두 21번 물을 꺾는다. 염전 한 정보마다 저수지 1개, 증발지 19개, 결정지 1개가 있다는 뜻이다.

 

저물도록 발틀 딛고 올라도 늘 자기 굴헝에 떨어지므로

꺼지지 않으려고 수차를 돌리는 사람, 저 무료한 노동

진종일 빈 허벅만 퍼올린 듯 소금 보이지 않네

하나, 구워진 소금 어느새 썩는 살마다 저며와 뿌옇게

흐린 눈으로 소금바다 바라보게 하네

그 눈물 다시 쓰린 소금으로 뭉치려고

드넓은 바다로 돌아서게 하네 _ 김명인, ‘소금바다로 가다’ 부분

 

염전은 태평염전이란 기업의 소유물이고, 염부는 그 기업에 소속된 일종의 소작농이다. 소출이 많으면 물론 배당도 많다. 염전에서 염부를 소금장인이라 부르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 일이다. 숙련된 염부가 갈수록 줄어들어 ‘장인’이라 추켜세우고 있다. 하나 그들의 벌이는 연 1천만원을 겨우 맞추는 형편이다. 염부는 소금은 하늘이 만든다고 하지만, 소금은 사람이 만든다. 햇볕과 바람이 만드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수한 소금을 내는 방법, 더 많은 소금을 내는 방법이 따로 있다. 바투 붙어 있는 소금밭에서 똑같은 시간 소금을 수확해도 1년 수확량이 2배 가까이 벌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염부는 이른 새벽 염전에 나와 차례로 물을 꺾고 숙소로 들어간다. 염부가 다시 밭에 나오는 시간은 그림자가 길어지는 오후 4시쯤이다. 그때부터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염부는 필사적으로 소금을 수확한다. 한 정보에 네댓 명의 염부가 달라붙는데, 대패를 잡고 바닥에 응결된 소금을 그러모으는 이가 조장이다. 동작 하나에도 헛된 게 없다. 손과 발의 놀림이 정확하고 민첩하다. 나머지 염부는 삽으로 소금을 모아 수레에 담아서 소금창고로 실어 나른다. 모든 작업은 묵묵히 진행된다.
 

해 뜨기 전 결정지에 가둬둔 바닷물을 해 지기 전에 소금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소금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 밤새 이슬을 맞은 소금은 모양부터 다르단다. 하여 해질녘 염부의 노동은 처절하다. 염부의 노동은 태양과 벌이는 시간 싸움이다. 염전이 열리는 4월에서 10월 사이 염부의 하루는 예외 없이 되풀이된다. 염전이 닫히는 겨울이 되면 염부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태평염전에서 저수지 물이 결정지에 다다르기까지 평균 20∼25일 걸린다. 그렇게 옮겨 다니며 바닷물은 제 염도를 시나브로 높인다. 결정지에서 바닷물의 최적 염도는 22∼25도다. 27도가 되면 소금이 오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염전에서 하는 말이 있다. 소금 한 줌 얻으려면 바닷물 1백 바가지가 필요하다. 염부의 땀도 그만큼은 필요해 보인다.
 

소금에 관하여 생각한다. 누구나 바닷물이 소금으로 떠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는 않는다. 소금은 용해되고 결정된다. 대지와 물의 경계에서 존재한다. 소금은 한편으로는 물의 유체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모래의 광물성을 포함한다. 그래서인가, 소금은 단지 짠맛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모든 맛을 맛으로 살아나게끔 이끈다. 소금은 맛의 근원이다.
 

하나 모든 소금이 식품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우리 바다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을 1992년 공업용 광물로 분류했다. 짠맛을 내는 염화나트륨 말고 다른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게 문제가 됐다. 정부는 우리 소금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속의 미네랄을 불순물로 판정했다. 하여 천일염으로 김치를 절여도, 젓갈을 담가도 위법 행위가 됐다. 우리가 먹어도 법에 걸리지 않는 소금은, 바닷물을 정제해 염화나트륨만 추출한 정제염(기계염)과 수입 소금이었다. 이들 소금은 염도가 98퍼센트 이상을 차지해 불순물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천일염이 식품의 신분을 회복한 건 2008년의 일이다. 정부는 천일염이 함유한 불순물(!)이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이란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관련 법률을 고쳤다. 그사이 우리 염전은 대부분 고사했다. 소금이 부족했던 1950년대 정부는 민간의 염전 개발을 독려했고, 그 뒤로는 소금의 생산과 판매에 관한 권한을 독점했다. 하나 1997년 소금이 수입되면서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전국의 염전에 특별 지원금까지 쥐어주며 “값싼 수입 소금이 들어오니까 빨리 업종을 변경하라”고 재촉했다. 1970년대 1만2천 헥타르였던 우리 염전은 이제 4천 헥타르를 겨우 넘긴다.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것이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연 매출은 다 합쳐 60억원에 그친다. 쓰레기 다음으로 싸다는 소금값 때문이다. 염부는 30킬로그램 한 포대에 6천원을 받고 염전에 소금을 넘긴다. 하나 서울에서 10킬로그램짜리 한 포대는 약 2만5천원에 팔린다.
 

소금에 관해 우리가 가장 모르고 있던 건 우리 소금의 우수성이다. 우리 소금은 어떠한 과장 없이 세계 최고다.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라 그냥 세계 최고다. 한때 불순물로 취급됐던 그 20퍼센트의 미네랄 덕분이다. 상식 수준에서, 소금이 해로운 건 염도 때문이다. 한데 우리 소금은 세계에서 염도가 가장 낮다. 낮은 편이 아니라 가장 낮다. 대신 천연 미네랄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서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갯벌 덕분이다. 시방 세계 최고의 명품 소금으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의 ‘게랑드(Gerande)’ 소금보다 우리 소금의 마그네슘 함량이 2.5배 높고, 칼슘은 1.5배, 칼륨은 3.6배 높다.
 

굳이 증도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지금은 요란스런 관광지가 된 소래만 가도, 그러니까 바닷바람에 얹힌 짭조름한 공기 한번 들이마셔 봐도 된다. 거기에, 언제부턴가 일상에선 잃어버렸던 활력이 스며 있기만 하면 상관없다. 북적이는 관광지가 아닌 곳을 부러 찾아가는 이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을 수 있어서다. 거기선 무엇을 보고 와도 좋고, 아무를 만나지 않고 와도 좋다. 굳이 소금이 아니어도 말이다.
 

글과 사진·손민호(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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