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화산섬 제주도에는 모두 3백68개의 오름이 있다. 이 오름들은 저마다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흔한 이름은 거문오름, 붉은오름, 민오름 등이다.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 빛깔을 띠는 거문오름, 붉은 화산토가 깔려 있는 붉은오름,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 형태의 민오름이 어딜 가나 쉽게 눈에 띈다.
제주도의 여러 거문오름 중 하나인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은 단순히 검어서 거문오름으로 이름 붙여진 곳이 아니다. 이 오름의 ‘거문’은 신(神), 절대자를 가리키는 검, 굼, 곰,감 등에서 기원한 말이다. 그러므로 거문오름은 신령스런 오름을 뜻한다.
선흘리의 거문오름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오름이 형성될 당시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북동쪽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가면서 20여 개의 용암동굴을 만들어낸 것이다. 제주도 동북지역에 형성된 여러 용암동굴의 모태(母胎)인 셈이다.
세계적 규모의 용암동굴로 유명한 만장굴, 기어가는 뱀의 모양을 닮아 ‘사굴(蛇窟)’이라고도 불리는 김녕굴,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한 벵뒤굴, 길이는 1백10미터에 불과한데도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 등이 환상적 광경을 연출하는 당처물동굴,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의 특징을 갖춘 용천동굴 등이 모두 거문오름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형성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한다. 독특한 구조와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과 함께 200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만의 독특한 특성을 두루 갖췄다. 북동쪽이 터진 말굽형 오름이고, 굼부리(분화구) 내부는 분지 형태를 이룬다. 또한 새끼오름인 알봉이 있고, 뜨거운 용암이 바다 쪽으로 흘러가면서 만든 용암 유출로와 크고 작은 자연동굴들도 형성돼 있다. 거문오름은 ‘산 자의 삶터, 죽은 자의 쉼터’라는 제주 오름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옛날에 주민들이 거주하던 움막터, 그리고 종가시나무와 붉가시나무 등으로 숯을 굽던 숯가마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명당으로 이름난 이 오름의 산기슭에는 오름 언저리에서 태어나 오름에 깃들여 살다가 일생을 마친 토박이들의 무덤도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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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가 1백8미터에 이른다는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선흘곶’이라는 곶자왈을 이룬다. 곶자왈이란 용암이 흘러간 곳에 나무와 각종 덩굴식물이 원시림처럼 얽혀 있는 숲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의 허파 같은 구실을 하는 곶자왈은 흙 대신 크고 작은 화산석이 쌓여 있어 물맛 깔끔한 지하수를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학술적, 자연유산적 가치가 높은 거문오름은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됐다.
거문오름은 현재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돼 있다. 지난해 거문오름 트레킹코스가 개방된 뒤로 거문오름의 탐방객 수는 평일 1백명, 주말과 휴일 2백명으로 제한됐다. 이 인원 내에서 사전 예약한 사람은 생태해설가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거문오름의 탐방이 허용된다. 필자도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7월의 첫 주말에 길이 5킬로미터의 거문오름 트레킹코스(A코스)를 직접 걸어보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

거문오름 트레킹코스를 이용하려면 먼저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의 거문오름 탐방안내소(064-784-0456)부터 들러야 한다. 사전 예약한 사람들도 이곳에서 탐방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어야 거문오름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출발 예정 시간을 40분가량 앞둔 오전 9시 20분경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탐방안내소 앞의 좁은 마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아온 탐방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유치원생과 부모, 유치원 교사들로 구성된 팀에 섞여 거문오름 트레킹에 나섰다. 탐방안내소를 출발한 지 10여 분 만에 거문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삼나무숲길에 들어섰다. 빼곡하게 들어찬 삼나무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얼마쯤 걷다 보니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거문오름 정상의 높이는 해발 4백56미터다. 하지만 출발지가 해발 4백미터대에 자리해 비고(比高), 즉 실제 오르는 높이는 1백12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삼나무숲길은 유치원생들조차도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사방으로 시야가 훤히 트인 거문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머리에 늘 구름 띠가 걸려 있는 한라산 정상뿐만 아니라 성산일출봉, 우도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찾아간 날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데다 아래의 분화구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안개 때문에 조망이 매우 답답했다. 인공조림된 삼나무숲과 천연의 곶자왈 원시림이 아름답게 조화됐다는 거문오름 굼부리를 내려다보기 위해 한참 동안 정상의 전망대에서 서성거렸지만 자욱한 안개는 끝내 스러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간간이 제법 굵은 빗발까지 떨어지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정상에서의 조망을 포기하고 근래 설치된 나무데크 탐방로를 따라 굼부리 안으로 내려갔다. 각양각색 나무들이 열대우림처럼 촘촘히 들어찬 숲은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초저녁의 숲처럼 어둑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인공조림됐다는 삼나무숲도 지나고, 식나무와 붓순나무가 자라는 상록활엽수림 지대도 통과했다. 그중 높이 3~5미터의 상록관목인 붓순나무는 연기가 별로 나지 않아 제주 4·3사건 당시 숨어 살던 주민들이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던 나무라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제주도 전역을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일대격전을 준비했던 일제는 거문오름의 굼부리 안에도 엄청난 규모의 갱도진지를 직접 구축했다고 한다. 울창한 숲에 뒤덮여 있어 미군 정찰기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금도 이곳은 당시 일본군 108여단이 구축한 갱도진지 10여 개와 병참도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나무가 워낙 무성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거문오름의 굼부리 밖은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했지만, 굼부리 안의 숲길은 의외로 상쾌하고 시원했다. ‘천연 에어컨’으로 불리는 풍혈(風穴) 부근을 지날 때는 온몸을 휘감은 냉기에 갑자기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여름에는 냉기를, 겨울에는 온기를 내뿜는다는 풍혈을 지날 무렵부터 굵은 빗방울이 나뭇잎을 연신 때렸다. 화산 폭발 당시 날아온 용암이 기존의 바위에 붙어서 생겨났다는 ‘화산탄’이 있는 곳에서부터는 아예 장대비가 쏟아졌다. 차츰 날씨가 갤 것이라는 예보만 믿고 판초우의나 우산을 미처 챙겨오지 않은 상태라, 고가의 카메라와 렌즈가 비에 젖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모자로 카메라를 덮은 채 서둘러 숲을 빠져나왔다. 원체 경황이 없다 보니 분화구 탐방로가 끝날 즈음에 만나는 수직동굴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거문오름 트레킹코스를 여유 있고 꼼꼼하게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제주도의 어떤 오름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한 곳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8월 16일까지 이어지는 국제트레킹 행사가 끝나기 전에 다시 그 숲길을 걷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지도 모르겠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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