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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해발 1천2백68미터의 두문동재는 분수령(分水嶺)이다. 이 고갯마루에 떨어진 빗방울이 동쪽으로 구르면 낙동강이고, 반면에 서쪽으로 떨어지면 한강물이 된다. ‘싸리재’라고도 불리던 이 고개는 매봉산(1천3백3미터)에서 금대봉(1천4백18미터)과 은대봉(1천4백42미터)을 거쳐 함백산(1천5백72미터), 만항재(1천3백30미터), 태백산(1천5백67미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한 허리를 이루기도 한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화전동을 잇는 38번 국도도 한동안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2001년과 2004년에 두문동재1, 2터널이 완공된 뒤로 두문동재 정상을 넘는 옛 구간은 차량 통행이 뜸해졌다. 주말이나 휴일이 아니면 인적마저 뜸한 편이다. 차량의 소통과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곳은 눈에 띄게 건강해진다.


 

두문동재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유난히 상쾌하다.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때 이른 무더위도 여기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대는 고갯마루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서다.


 

두문동재 북쪽에는 금대봉이 우뚝하다. 이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는 1993년 환경부에 의해 ‘대덕산·금대봉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생태계보존지역 지정에 앞서 실시된 생태조사에서는 참꿩의다리, 금강제비꽃, 털개불알꽃, 홀아비바람꽃 등 한국 특산식물 15종과 털댕강나무, 바이칼바람꽃, 나도바람꽃, 혹쐐기풀 등 희귀식물 16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참매, 새매, 검독수리 등의 천연기념물 조류와 도마뱀, 도롱뇽, 꼬리치레도롱뇽 같은 양서류의 집단서식지도 발견됐다.


 

이처럼 생태계가 잘 보존된 대덕산·금대봉 생태계보존지역을 찾아가는 트레킹은 두문동재 정상을 출발해 금대봉, 고목나무샘, 분주령, 검룡소 등을 거쳐 안창죽마을로 내려가는 코스가 무난하다. 총 길이가 7.4킬로미터인 이 코스는 두문동재 정상까지 자동차로 올라간 다음부터 줄곧 평탄한 능선길과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걷기에 딱 좋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서너시간만 느긋하게 걸으면 대덕산·금대봉 생태계보존지역의 웅숭깊은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두문동재 정상에서 금대봉 아래까지 약 1.5킬로미터 구간은 차량 통행이 금지된 임도를 따라간다. 그 길에서부터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지천이다. 돌나물과 흡사한 기린초, 미나리의 삼촌쯤 되는 미나리아재비, 범종 모양의 초롱꽃, 꽃송이마다 꿀을 가득 담은 꿀풀 등이 풀숲 곳곳에 소담스레 피었다. 금대봉 북쪽 기슭에는 시야 훤한 초원이 펼쳐진다. 무성한 풀밭에는 범꼬리 군락지가 형성돼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그 사잇길로 걷노라니 마치 천상의 꽃길을 걷는 듯 황홀하다.


 




 



범꼬리 군락을 지나 나직한 고갯길을 하나 넘어서면,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덕산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로 다가온다. 길 주변의 양지바른 풀숲에는 가느다란 줄기에 작은 꽃이 무수히 달린 산꿩의다리와 한국 특산식물인 둥근이질풀도 간간이 눈에 띈다.


 

널찍한 임도를 벗어나 조붓한 숲길로 들어선 지 5분 만에 고목나무샘이 눈에 들어온다. 이 샘터를 처음 찾은 5년 전쯤에 비해 샘물의 수량은 줄고 물빛은 탁해 보였다. 금대봉과 매봉산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의 북쪽에 위치한 이 샘은 한강 수계의 최상류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한강의 공식 발원지인 검룡소 대신에 이 샘을 진짜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목나무샘을 지날 즈음부터 숲길은 산비탈의 경사면을 가로지른다. 길은 비좁고 숲은 울창하다. 온갖 활엽수와 다래, 머루 등의 덩굴식물이 빼곡해서 손바닥만한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숲 바닥에는 수십, 수백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부엽토가 두껍다. 그 덕에 양탄자를 밟는 것처럼 푹신한 감촉이 고스란히 발바닥에 전해온다.


 

광활한 활엽수림 사이사이에는 낙엽송 숲이 형성돼 있다. 대부분 예전에 산골 주민들이 불을 놓아서 농사를 짓던 화전(火田) 터에 조성된 숲이다. 낙엽송 숲은 척박해서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썩은 부엽토를 자양분 삼아 산제비난, 여로, 하늘말나리 등이 곱게 피어 있다.


 

쭉쭉 뻗은 낙엽송 숲과 아름드리 참나무 숲을 지나서 다시 능선길을 얼마쯤 걸으면, 인진쑥에 뒤덮인 초원지대로 들어선다. 이 쑥대밭은 분주령(1천80미터)까지 이어지는데, 걸어가는 내내 진한 쑥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쑥 향기 짙은 풀밭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곤함이 모두 사그라지는 듯하다.


 


 

분주령에서 검룡소 입구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뿐해진다. 걸음에 가속이 붙으니 길가에 널브러진 산딸기와 오디(산뽕나무 열매)에도 손이 가질 않는다. 분주령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검룡소 갈림길을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작은 나무다리와 평탄한 낙엽송 숲길을 지나 15분만 걸어가면 총길이가 5백14.4킬로미터에 이르는 한강의 ‘공식’ 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내내 섭씨 9도를 유지하는 지하수가 하루 2천 톤씩 솟아난다고 한다.



 



 

검룡소에서 태백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는 삼수령(피재)을 지나게 된다. 이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백두대간의 봉우리들 중 하나인 매봉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 산의 북사면에는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이 들어서 있다. 울창했던 천연림을 사라지게 만든 채소밭이지만, 그 풍광만큼은 퍽 이국적이어서 관광객들과 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태백시가 매봉산 해발 1천2백72미터에 8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뒤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년 열두 달 중 어느 때에 찾아가도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지만,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여름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매봉산 진입로가 시작되는 피재 아래의 해발 8백50미터 지점에는 구와우마을이 있다. 태백시 용연동에 속하는 이 마을에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033-553-9707)이라는 사설 식물원이 자리 잡고 있다. 총면적 66만 제곱미터(20만여 평)의 식물원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바라기 꽃밭이 조성돼 있다. 숱한 고봉들이 중첩한 백두대간 고원지대에 수만 그루 해바라기가 만발한 광경은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진풍경이다. 이곳의 해바라기 꽃밭은 8월 15일 전후에 절정기를 구가한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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