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어느 해 여름밤에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서울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띠처럼 둘러쳐진 서울성곽 너머로 펼쳐진 서울 도심 야경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게다가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낙산(125미터)과 인왕산(338미터), 북악산(342미터)과 남산(262미터)의 산줄기는 마치 어머니 품처럼 아늑해 보였다.
전통 성곽과 현대의 고층빌딩들이 한데 어우러진 서울의 야경은 의외로 천연덕스럽고 조화로웠다. 적어도 야경 하나만큼은 세계 어느 수도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때 내 가슴 깊이 들어앉은 것은 야경의 황홀함이 아니었다. 휘황한 야경은 오히려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내 뇌리에 또렷이 남은 것은 북악산 등성이를 따라 단순하게 늘어선 서울성곽이었다.
사적 제10호로 지정돼 있는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처음 축조됐다. 농한기인 1, 2월에 걸쳐 49일 동안 조선팔도에서 11만8천여 명의 백성을 동원해 성곽의 대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의 성곽은 산지만 돌로 쌓고 평지에는 토성을 구축했다. 그러다 세종 4년(1422) 농한기인 1월, 다시 32만명의 인부와 2천2백여 명의 기술자를 동원해 성곽 전체를 석성으로 개축했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한참 지난 뒤인 숙종 30년(1704)에는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새로 북한산성까지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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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의 둘레는 원래 18.2킬로미터에 이른다. 하지만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차 철로 부설 등을 이유로 철거되어 지금은 산지 성곽만 10.5킬로미터 남아 있다. 그나마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숙정문, 촛대바위, 곡장, 청운대, 백악마루를 거쳐 창의문에 이르는 4.3킬로미터 구간은 1968년에 발생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른바 ‘1·21사태’ 이후로 40여 년 동안이나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금단(禁斷)의 영역이었다.
2007년 4월부터 와룡공원에서 창의문 사이 구간이 전면 개방됐고, 이제는 신분증만 지참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과 고색창연한 역사유적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서울성곽 길을 걸어볼 수 있다.

나는 올해 4월 중순에 와룡공원에서 말바위까지 6백 미터쯤의 짧은 성곽 길을 처음 걸어보았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만발하고 연둣빛 신록이 막 돋아나기 시작한 그즈음의 성곽 주변 풍경은 강원도의 어느 첩첩산중에 못지않은 자연미를 느끼게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쯤인 5월 중순에는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연결되는 8킬로미터가량의 서울성곽 길을 가족들과 함께 다시 찾았다. 혜화동 서울과학고등학교 뒤편에서 시작해 와룡공원, 말바위, 백악마루, 창의문, 인왕산을 거쳐 사직공원에 이르는 성곽 길은 어느새 짙은 녹음에 뒤덮여 있었다. 서울 도심을 에워싼 내사산(內四山 : 북악산·남산·낙산·인왕산) 가운데 2개를 연이어 넘는 길이었지만, 녹음 짙은 숲 특유의 향기와 시원한 숲 그늘 덕에 비교적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서울성곽 길을 걸어서 북악산을 넘을 때에는 와룡공원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반대편인 창의문에서 백악마루로 곧장 오르는 길은 몹시 가팔라서 마음 느긋하게 걷기 어렵다. 반면 와룡공원에서 출발하면 시종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평탄하거나 완만한 경사의 숲길을 지난다. 와룡공원을 출발해 성벽 바깥 길을 5백 미터쯤 가면, 성벽 안쪽 길로 넘어가는 나무계단을 오르게 된다. 이 계단의 맨 위쪽 전망대에서는 ‘부촌’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성북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말바위 전망대에서는 삼청공원, 창덕궁 후원(비원), 남산 등지의 울창한 활엽수림과 종로, 세종로, 명동 일대의 빌딩숲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삭막한 서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숲이 울창한 생태도시 서울만 두드러져 보인다.
말바위부터 청운대 아래 청풍암문까지는 성벽 안쪽 길을 따라간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교부받는 말바위쉼터부터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지정장소 이외에는 함부로 사진을 촬영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탐방로를 벗어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몇 가지 주의사항만 유념하면 큰 불편 없이 기분 좋게 서울성곽 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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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쉼터에서 4백 미터 떨어진 곳에는 서울성곽 4대문 중 하나인 숙정문이 있다.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숙정문은 애초에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만든 게 아니었다. 서울성곽에 동서남북 4대문의 형식을 갖추고,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닫아놓고 백성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지켰으나 드물게 남대문(숭례문)을 막고 숙정문을 열었던 때도 있었다. 가뭄이 심해서 비 오기를 간절히 바랄 때였다. 풍수상으로 남쪽은 양기, 북쪽은 음기가 많아 가뭄이 심할 때엔 음기를 통하게 해야 비가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흥미롭고도 다양한 역사와 전설들을 전문 해설사에게서 들으며 북악산 서울성곽길을 걷고 싶다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말바위쉼터와 창의문쉼터에서부터 시작되는 ‘북악산 서울성곽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쇠말뚝이 박혔던 촛대바위, 북악산과 인왕산의 서울성곽이 시원스레 조망되는 곡장, 성의 안팎을 은밀히 오갈 때 사용하던 청풍암문을 지나면 금세 청운대에 도착한다. 청운대에서는 서울 도심 쪽으로 시야가 훤하고,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가 지척이다. 탐방로가 성벽 바깥쪽으로 개설돼 있는 청풍암문과 청운대 구간에서는 서울성곽의 축조시기별 특징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청운대와 백악마루 사이의 성곽길에는 1·21사태 당시의 총탄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1·21 소나무’도 찾아볼 수 있다.
1·21 소나무를 뒤로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백악마루 아래의 갈림길에 도착한다. 여기서 몇 십 미터 거리인 백악마루는 ‘백악산(白岳山)’으로도 불리는 북악산의 정상을 가리킨다. 북한산의 남쪽 지맥에 솟은 북악산은 내사산 가운데 가장 높다. 산세가 좌우 균형을 이룬 데다 가운데 부분이 반듯하게 솟아올라 마치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닮은 듯한 형상이다. 조선시대 이후로 북악산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돼왔다. 조선시대에는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진산(鎭山)이었고, 지금은 청와대의 뒷산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백악마루에는 대공포대까지 들어서 있었다. 백악마루에 올라섰을 때의 감회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백악마루와 창의문 사이에는 어지럼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이 한동안 계속된다.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씩 되는 돌들을 몹시 가파른 이곳 산등성이까지 옮겨와서 성을 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과 경이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홀로 이곳을 찾은 한 외국인 탐방객은 인왕산이 건너다보이는 이 길의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사방을 둘러보기도 했다.
북악산의 서울성곽 길은 창의문에서 끝난다. 4소문 중 하나로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위치한 창의문은 흔히 ‘자하문’으로 불린다. 이 자하문에서 시작되는 서울성곽 인왕산 구간은 오전 9시~오후 5시(하절기)까지만 개방되는 북악산 구간과 달리 월요일이나 공휴일 다음 날만 아니면 24시간 언제라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서울 도심의 휘황한 야경을 감상하거나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돋이를 보면서 성곽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서울성곽 복원정비공사가 한창인 범바위~사직공원 구간은 올해 말까지 출입하기 어렵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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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