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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인천역을 기점으로 차이나타운과 소래포구, 오이도를 거쳐 시화방조제를 넘었다가 다시 오이도로 나오는 거리는 약 65km. 하루에 충분히 달릴 수 있는 코스다. 인천역이 자리한 중구 지역의 길은 다소 복잡하지만 이국적인 차이나타운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수구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바다와 인접한 77번 국도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어 나름대로 소래포구까지 달리는 맛이 좋다. 소래포구 건너 월곶포구에서 옥구공원까지 약 4km 구간은 자전거도로가 산뜻하게 단장되어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다. 아울러 옥구공원에서 가까운 오이도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시화방조제에는 널찍한 자전거도로가 쭉 뻗어 있어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맛이 그만이다.

석모도에서 자전거 여행을 즐긴 후 강화도를 빠져나와 인천으로 접어드니 군데군데 자전거도로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무늬만 자전거도로다. 인도 위에 색깔만 달리해 보행로와 구분해놓은 자전거도로는 곳곳에 움푹 꺼진 보도블럭이 방치돼 있어 자전거 타기에 위험해 보인다. 게다가 중간중간 차량들마저 버젓이 주차돼 있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의 물건이 점거하고 있다. 또 자전거도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로 다니는 통에 이를 피하느라  보행로를 달려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천시내 한복판에 들어와서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못해 죽어라고 달렸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인천 길이 워낙 복잡해 동네 아저씨에게 소래포구 가는 길을 물으니 약도까지 그려가며 친절하게 가르쳐주긴 했는데, 웬걸! 단 한 뼘의 갓길도 없는 왕복 2차로 도로는 나 같은 초보가 자전거로 가기엔 무리인, 아주 요상한 길이었다. 신호가 떨어질 때마다 뒤에서 차들이 한 무더기씩 몰려오면서 빵빵대고, 비켜줄 곳이 없는 나는 식은땀이 났다. 여전히 출발과 멈춤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어설프게 멈추다 잘못될까봐 죽어라고 달릴 수밖에. 옷이나마 평상복이라면 좋으련만 요란한 헬멧에 고글까지 쓴 나의 복장은 프로급, 언뜻 보면 사이클 선수 같다. 그런 사람이 비켜주지도 않고 그 많은 차들을 꽁무니에 줄줄이 매달고 달렸으니…. 뭣 모르고 들어섰다 정말이지 혼쭐이 났다. 


 


그렇게 헤매다 들어선 곳이 인천역 앞의 차이나타운.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의해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들의 정착지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차이나타운의 상징인 패루(牌樓·화려한 지붕을 얹은 중국 전통 대문)를 지나면 거리의 색깔도, 냄새도 확 달라진다. 진한 자장면 냄새와 함께 거리는 온통 중국 특유의 붉은색 물결.

일명 ‘자장면 거리’로 알려진 이 길목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중국풍의 건물, 중국 의상, 중국 기념품점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데다 중국 노래까지 흘러나와 중국의 뒷골목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차이나타운에서는 호객행위도 거의 없다. ‘오고 싶으면 오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여행자 처지에선 오히려 부담 없어서 좋다. 골목길을 걷다 중국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인 월병을 비롯해 공갈빵, 중국 의상을 곱게 차려 입은 화교여성이 밀가루 반죽을 비비 꼬아 즉석에서 튀겨주는 꽈배기를 사먹는 맛도 그만이다.

자장면 거리 중간쯤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들면 차이나타운의 명물로 떠오른 ‘삼국지 벽화’를 만날 수 있다. 화교중산학교 후문 담을 따라 135m가량 이어지는 이 벽화는 소설 ‘삼국지’를 만화 형식(77장면)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한 장면씩 차분하게 읽다 보면 삼국지를 다 떼는 셈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워낙 생생해 벽화라기보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차이나타운에서 나와 송도유원지를 거쳐 소래포구로 향했다. 비릿한 갯내가 폴폴 풍기는 포구엔 먹이를 찾기 위해 끼룩끼룩 날아다니는 갈매기, 보기만 해도 정겨운 작은 어선들, 갖가지 수산물들이 진열돼 있는 좁은 골목길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소래포구는 주말이면 유난히 찾는 이들이 많다.



 
포구 안쪽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조개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조개 코너가 있는가 하면 싱싱한 활어회 코너, 짭짤하고 매콤한 젓갈 코너 등이 이어져 군침이 절로 돈다. 특히 활어회 코너 앞에는 마루나 장판을 깔아놓아 이곳에서 산 해산물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번듯한 횟집은 아니라도 바다가 보이는 난간 옆에 철퍼덕 주저앉아 회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이 포구의 또 다른 매력이다.



소래포구 끝에는 수인선 협궤열차길이 놓여 있다.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채 낡은 배 몇 척이 동동 떠 있는, 볼품없는 포구에 나름대로 멋을 안겨주는 추억의 기찻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의 천일염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인선 철도는 이후 서울, 수원 등지로 새우젓을 팔러가는 소래 사람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낡은 기찻길만 덩그렇게 남아 기차가 아닌, 사람들의 보행로(철길 위에 철망을 깔아놓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가 돼버렸다.

이 기찻길을 건너면 바로 월곶포구다. 기찻길 위의 좁은 보행로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게 미안해 포구 안쪽에 마련된 육교로 올라가 소래대교를 건넜다. 북적대는 소래포구와 달리 월곶포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포구를 벗어나니 환상적인 자전거도로가 펼쳐져 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데다 주변은 잔디밭에 온통 꽃길이다. 구간마다 개나리, 홍매화 등이 줄줄이 피어 있고 길가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피어난 노란 민들레도 참 곱다. 가는 길에 오이도역을 둘러본 뒤 김밥을 사들고 옥구공원에서 점심 요기를 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인근 주민들이 저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 공원에 옹기종기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옥구공원에서 3km가량 달리면 오이도다. 방파제와 벚꽃길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포구다. 긴 방파제를 따라 파르스름한 빛깔의 울타리가 둘러져 있는 모습이 산뜻하다. 방파제 끝엔 빨간색의 선이 매끄러운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오이도의 명물인 낙조전망대란다.

기분 좋게 포구를 둘러보고 오이도를 빠져나오다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생겼다. 포구 앞 횡단보도에서 초록불 신호를 받아 자전거를 끌고 건너는데 웬 차가 신호를 무시한 채 코앞으로 휙 지나간다. 예기치 못한 차 때문에 화들짝 놀랐건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차가 우리를 무시하고 또 그 모양으로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야”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운전자는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뭐? 야? 이게…” 하며 오히려 큰소리다. 서로 육두문자를 써 가며 옥신각신하니 우리 주변에 구경꾼들이 빙 둘러섰다. 보다 못해 한 아주머니가 그만하라며 뜯어말린다. 벌렁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자전거를 끌고 가다보니 금세 후회가 밀려온다. 말 한마디에 벌건 대낮에 서로 얼굴 붉히고 큰소리를 냈으니 시원하다기보다 그렇게 싸운 내가 자꾸만 싫어진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2km쯤 가니 바다를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뻗은 시화방조제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넓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바보 같은 싸움으로 무거워졌던 마음이 좀 풀리는 듯하다. 인간이 뒤집어놓은 마음을 이렇게 자연이 어루만져주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시화방조제의 길이는 11km. 길기도 하다. 쭉쭉 뻗은 방파제 길은 차도와 인도(폭도 3m가량 된다)가 분리되어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나만의 전용도로였다. 바다를 끼고 쭉 뻗은 길에서 차나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오랜만에 씽씽 달릴 수 있어 좋았지만 바람이 시샘하는지 제법 센 맞바람이 분다. 모든 걸 날려버리고 싶어서였을까? 그 바람이 싫지 않았다.

갈 길은 멀지만 방조제 밑으로 내려가 조금은 쉬어가자 싶었다. 늘 빨리빨리 속에서 숨가빠하던 일상을 떨쳐버리자고 나선 여행이니, 이번 여정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에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다. 버너와 코펠을 꺼내 물을 끓여 커피를 타 마셨다. 꿀맛이다. 번거롭기도 하고 짐도 줄여야겠기에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 여행의 맛을 더하기 위해 챙겨온 버너와 코펠이 처음으로 빛을 보는 순간이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자동차들 외에 그 누구도 없는 우리만의 세상에서 잠시 여유를 부리다 시화방조제를 넘으니 대부도 입구. 경기도 지정 ‘대부도 방아머리 음식문화거리’라 그런지 길가는 화려한 간판의 음식점 천지다.

어느새 날도 어둑어둑해져 오늘은 예서 멈추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창문이 딸린 네모진 방 한구석에 구식 TV 한 대만 달랑. 허름하긴 했지만 잘 꾸며진 모텔방보다 훨씬 편한 느낌이다. 짐을 풀어놓고 민박집 앞 음식점에서 매콤한 주꾸미 철판 볶음에 소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짜르르한 게 몸이 확 풀린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글·최미선 여행작가 / 사진·신석교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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