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자칭 ‘역마살 부부’인 최미선 신석교 씨는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며 아내는 글로, 남편은 사진으로 그 흔적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가출’을 밥 먹듯 하는 이들 부부가 한마음으로 만든 책으로는 ‘야호! 우리 가족 체험여행’ ‘대한민국 최고 여행지를 찾아라’ ‘네팔 예찬’ ‘퍼펙트 프라하’ ‘개도 고양이도 춤추는 정열의 나라 쿠바’ 등이 있다.
자전거 ‘생초보’인 나와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 ‘길치’ 남편의 자전거 해안 일주 여행. 드디어 출발이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에 해당돼 우측 통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바닷가에 인접해 타려면 서해 쪽부터 시작해 남해, 동해를 거치는 코스를 잡아야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화도. 막상 출발하려니 이런 저런 두려움이 밀려든다. 자전거 초보인 내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가다가 집 앞에서부터 사고가 나면 어쩌나. 시작부터 걱정 투성이다. 그럼에도 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던가? 똑 떨어지는 답은 없다. 그저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분명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볼 뭔가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서울 정릉의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악터널로 향하는 오르막길. 초반부터 자전거를 끌고 낑낑대며 걸어 올라갔다. 터널 안에 들어서니 쌩쌩 달리는 차량들의 굉음에 공포심이 인다. 터널 가장자리에 마련된 보도의 폭은 1m 남짓. 자전거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겁부터 먹는 나는 자꾸만 자전거를 세우다 급기야 쓰러질 뻔했다. 우당탕탕. 터널 벽면 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면서 말끔하게 빨아 입은 하얀 점퍼 소매에 시커먼 매연이 묻어났다. 엥? 이게 뭐야. 시작부터 진땀이 나는 건 고사하고 스타일마저 확 구겼네.
북악터널을 지나니 내리막길. 자전거는 끌고 가면 보행자가 되고 타고 가면 차량으로 취급돼 자전거도로가 없으면 차도로 달리는 게 원칙이란다. 자전거 타는 제맛을 보려면 내리막길이 제격이지만 차도로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 때문에 인도로 내려오다 사람들에게 막혀 수시로 내렸다 탔다 했다. 
자전거는 가끔 타고 오히려 걷는 때가 더 많다. 말이 자전거 여행이지 차라리 도보 여행이 속이 더 편하지 싶다. 그렇게 자전거 타다 걷다를 반복하다 만난 곳이 홍제동의 옥천암. 아담한 규모의 옥천암 앞으로 흐르는 물이 참 맑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렇듯 맑은 냇물을 보게 되다니. 맑은 물 가장자리로 넓게 펼쳐진 바위도 멋스럽기 그지없다. 그동안 차로 이곳을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이런 냇물에 이런 암자가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니…. 대단한 곳을 발견해서라기보다 새삼 자전거 여행의 묘미가 느껴져 가슴이 설렌 첫 순간이었다.
홍제천에서 연결되는 자전거도로를 타고 성산대교 건너 한강자전거도로로 내려오니 살 것 같다. 이제 매끈한 자전거도로를 타고 행주대교 방향으로 전진. 강바람을 맞으며 마음 편히 달린다. 이제야 자전거 타는 기분이 난다. 행주대교 남단에서 연결된 길을 따라 김포를 거쳐 초지대교 입구까지 오니 어느새 해질 무렵. 어둑어둑한 다리를 건너는데 부슬부슬 봄비까지 내려 초지대교를 건넌 지점에서 멈췄다.
다음날 아침,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새소리가 싱그럽다. 황톳빛 흙은 비에 젖어 더욱 짙어졌고, 진한 흙내음도 향긋하다. 왠지 낭만적일 것 같던 자전거 여행. 하지만 어제는 하도 힘들어 “개뿔, 낭만은…” 하고 중얼거렸는데 오늘은 꽤나 낭만적인 풍경이다.
어제 멈춘 지점에서 다시 출발. 초지대교를 등지고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초지진 입구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초지대교의 모습이 아름답다는데 어제 저녁 그걸 볼 겨를이 없었던 게 아쉽다. 매표소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선다. 아담한 마당에 포대가 있고 개나리 진달래도 화사하게 피어 있어 아늑한 느낌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아름답지만 외세의 침략을 받아 곳곳에 남아 있는 생채기들을 보니 마음이 알싸하다.
석양 물든 초지대교의 모습 장관
초지진을 나와 선수선착장까지 내처 달렸다. 강화도에서 석모도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 외포리선착장과 선수선착장인데 초지대교에서 가면 선수선착장이 훨씬 가깝다. 석모도까지는 15분 거리. 폭이 좁은 석모도 길은 중앙선으로 차선이 분리돼 있지 않아 조심해야 하지만 다행히 오가는 차편이 드물다. 오른쪽은 민가, 왼쪽은 온통 논두렁 밭두렁이다.
보문선착장에서 6km가량 가면 보문사 입구. 보문사 입구를 지나니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다. 500m가량 이어지는 언덕길을 넘어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내려오면 두 갈래길. 오른쪽은 외포리로 나가는 석포선착장 길, 왼쪽은 석모도 끝 마을인 상리, 하리 가는 길이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데다 드나드는 차량도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석모도의 아우토반’이라 부르기로 했다. 모처럼 차 없는 도로에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렸다.

석모도 풍경은 정지된 느낌이다. 길게 늘어선 전봇대, 비에 젖은 아스팔트 길, 텅 빈 논두렁, 낡은 이발소…. 간간이 저만치에 있는 농가에서 낯선 이방인의 발걸음을 향한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흐린 날, 적막감이 흐른다. 하리마을 길 끝에 영화 ‘시월애’ 촬영지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몇 년 전 풍랑에 세트장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갈대, 전봇대, 텅 빈 갯벌에 떠 있는 낡은 배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잔풀들로 덮인 적막한 바닷가를 잠시 걸었다. 봐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복잡한 세상! 휑한 바람만 스치는, 그 아무 것도 없음이 오히려 좋았다.
하리마을에서 돌아나와 석포리선착장으로 가는 길목. 유독 눈길을 끄는 집이 하나 있다.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집 안팎에는 고물과 잡동사니들로 수북한데 어째 예사롭지가 않다. 언뜻 보면 고물상 같은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하나같이 예술품들이다. 녹슨 자전거 체인과 페달을 엮어 벽에 걸어놓은 것은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덩굴과 어우러져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돼 있다. 타이어 3개가 감싸고 있는 나무도 독특하다. 집 앞을 서성이며 구경하고 있자니 주인아저씨가 환한 웃음으로 “아이구, 자전거 타고 오셨어?” 하며 말을 건넨다. “마음껏 구경해요. 여기가 디카족들에게 촬영 장소로 인기거든.” 농담 삼아 말씀하셨지만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삼흥공업사)은 암암리에 ‘석모도의 명물’로 인정받는 곳이다. 30여 년간 철공소를 꾸려온 아저씨의 삶터로, 두툼한 철근을 이리저리 구부려 만든 간판 글씨도 예술이다. 구수한 입담의 아저씨와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한참 나눴다. 여행지에서 동네 사람과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차가 아닌 자전거이기에 가능하다. 아저씨 얘기는 밤새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쉬움을 접고 일어섰다.
거리에서 파는 강화 순무 김치에 군침 ‘꿀꺽’석포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외포리로 나왔다. 인근 간이매점과 슈퍼마켓에선 갈매기들을 위한 새우깡을 박스째 수북이 쌓아놓고 판다. 이곳 갈매기는 일명 ‘거지 갈매기’라고 한다. 배에 탄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들은 배를 따라 하루에도 수없이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를 오가는 만큼 체력 소모도 많을 거다. 하지만 이용객이 별로 없는 평일엔 쫄쫄 굶다 주말이나 돼서야 포식하니 행여 위장병 걸리는 건 아닌지…. 갈매기의 아픔이다.
외포리선착장에서 인산삼거리를 거쳐 강화읍내로 나오면 제법 큰 풍물시장이 들어서 있다. 시장 골목엔 소박한 식당들도 많다. 거리에는 강화 순무 파는 곳이 주르륵. 입맛 없는 봄철, 돌아오는 길에 쌉싸래한 순무김치 한 통(2kg·5000~6000원선) 사오는 것도 좋다.
글·최미선 여행작가 / 사진·신석교 여행사진작가

| I n f o r m a t i o n |
· 석모도 가는 길 선수선착장~보문선착장 : 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8시~오후 5시. 매시 정각 출발. 외포선착장~석포선착장 : 연중 오전 7시~오후 7시 반(여름철엔 오후 9시). 매시 정각, 30분 출발. 자전거를 싣고 가면 왕복 5600원. 문의 032-932-6007. · 현지에서 자전거 빌리려면? ·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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