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충청도에 ‘내포(內浦)’라는 지역이 있다. 지금은 거의 잊힌 지명이 됐지만,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이런 내용이 기술돼 있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 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 둘레의 열 개 고을을 통틀어서 내포라 한다. 이 지역이 충청도에서는 가장 살기 좋다. …큰 난리 때에도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고, 땅이 기름지고 넓으며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해 부자들이 많다.”
오늘날의 서산, 당진, 예산, 태안, 홍성 등이 내포에 포함된다. 이 지역의 지형지세는 흔히 비산비야(非山非野)라는 표현으로 함축된다. 산도 아니고, 들이라 하기도 어려운 구릉의 연속이다. 험산준령처럼 위압적이지도 않고, 광활한 평야처럼 밋밋하지도 않은 풍경이다. 그래서 언제 봐도 따뜻하고 아늑하다. 그런 지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성품이 부드럽고 넉넉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내포에서 가장 높은 산은 가야산(해발 677m)이다. 금북정맥의 끝에 우뚝한 가야산은 내포 땅의 천연전망대다. 사방으로 시야가 훤해서 작은 마을이나 실개천까지도 손금처럼 내려다보인다. 또한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봉긋봉긋 솟아오른 원효봉(677m), 옥양봉(621m), 일락산(521m), 수정봉(453m), 상왕산(307m) 등의 산줄기에는 여러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연이어져 트레킹이나 걷기 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른바 ‘내포문화권’의 중심 구실을 해온 곳도 가야산이다. 백제 최고의 마애불로 손꼽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해 개심사, 보원사지, 일락사, 해미읍성 등의 문화유적과 고찰들이 가야산 자락에 들어앉았다.
가야산이 품은 절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개심사다.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의 상왕산 기슭에 자리한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때에 혜감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절집의 규모는 작아도, 때 묻지 않은 자연풍광과 산사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찰이다.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에 들어가려면, 초입의 세심동(洗心洞)에서 마음을 씻어야 한다. 세심동 숲길의 돌계단 양쪽으로는 우람한 적송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어 솔향기가 그윽하다. 비탈진 돌계단 길을 찬찬히 오르다 보면 숨은 가빠지고 다리는 뻐근해도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해진다. 그 길은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따사롭고, 어디선가 쉼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정겨운 덕택이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솔숲의 돌계단을 모두 올라서면 개심사가 지척이다. 입구에는 경지(鏡池)라 불리는 네모진 연못이 있다. 마음의 때가 얼마나 씻겨졌는지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연못인 셈이다. 경지에 가로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배롱나무, 벚나무 등의 고목에 둘러싸인 개심사 경내에 들어선다.
개심사의 첫인상은 소박하고도 단정하다. 적당한 크기의 건물들이 주변의 산세와 원만하게 조화를 이룬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겸손함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특히 범종각과 무량수전, 요사채인 심검당 등의 기둥은 제멋대로 휘어지고 구부러진 나무의 자연미를 고스란히 살려서 세웠다. 자연의 일부나 다름없는 개심사에서는 누구나 마음의 문을 슬그머니 열어젖히게 마련이다.
개심사 너머에는 상왕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보원사지와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개심사와 두 곳의 거리는 찻길로 10km가 넘지만, 직선거리는 2, 3km에 불과하다. 그중 보원사지는 3.5km가량의 조붓한 산길을 1시간 20분쯤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개심사 주차장에서 개심사까지의 약 800m와 보원사지에서 서산마애삼존불상까지의 1.5km를 합쳐 총 길이가 5.8km쯤 되는 이 오솔길은 수려한 자연과 유구한 역사가 어우러진 환상의 답사길이다.
개심사에서 보원사지로 가는 산길은 산신각 위로 나 있다. 그 솔숲 길을 20분쯤 오르면 상왕산 능선의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왼쪽의 넓은 길이 보원사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길은 솔숲과 잡목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흔적이 뚜렷하고 비교적 평탄해서 산보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다. 길이 수월하다 보니, 어느새 키 작은 조릿대 사이를 지나 보원사지로 내려선다.

보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화엄 10찰의 하나로 꼽혔고, 한때는 1000여 명의 승려가 머무르던 대찰이었다고 한다. 고려 초기에는 국사를 배출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다가 400여 년 전 갑자기 폐허가 됐다. 하지만 보원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연혁을 알 수가 없다. 오늘날 사적 제316호로 지정된 보원사지에는 석조(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법인국사 부도(보물 제105호), 법인국사 부도비(보물 제106호) 등의 유물들이 남아 있어서 전성기 때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보원사지에서는 현재 대규모의 발굴조사 작업이 한창이다. 그래서 예전의 한적한 정취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발굴 현장과 여러 유물들을 관람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더욱이 보원사지 발굴조사 작업을 맡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홈페이지(www.bcp.go.kr)를 통해 미리 신청하면 발굴현장 체험도 가능하다.

보원사지가 자리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용현계곡은 속칭 ‘강댕이골’이라고도 불린다. 이 작은 골짜기는 백제 당시에 태안반도를 통해 건너온 중국의 불교문화가 수도인 부여로 전달될 때 반드시 거쳤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이라는 찬란한 불교미술품이 이곳에 남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보원사지에서 1.5km 거리의 도장바위 암벽에 새겨진 서산마애삼존불상은 한동안 보호각에 갇혀 있었다. 2007년 12월에 보호각이 철거되기 전까지는 삼존불상의 처지가 몹시 갑갑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햇살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백제의 미소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백제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여래입상이 가운데에 있고, 그 양쪽에는 익살스런 표정의 반가사유상과 보살입상이 협시불로 서 있다. 그중 본존불인 여래입상의 두 볼에 가득한 미소는 꾸밈없이 밝고 너그러워 보인다. 마치 “어서 오너라” 하며 반기는 할아버지의 넉넉한 미소를 연상케 한다.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 까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는 듯한 두 협시불도 “왔시유?” 하며 각별히 친근감을 표시하는 이웃 아주머니의 얼굴을 닮았다. 세 불상 모두 사람들을 괜히 주눅 들게 하는 권위나 위엄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백제인들의 따뜻한 낯빛과 심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이처럼 외진 산중의 가파른 암벽에서 천년이 넘도록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세월을 견뎌온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따뜻한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도 서산 땅은 꼭 한번 찾아볼 만하다.
글·사진 양영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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