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히 막걸리 전성시대라 부를 만하다. 와인과 사케에 이어 막걸리가 뜨고 있다. 언제부터 막걸리가 이런 대접을 받았나?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어린 시절 막걸리는 양은 주전자 꼭지에 주둥이를 대고 한 모금 꿀꺽 마시던 술이다. 큰 광주리에 담긴 못밥을 이고 논두렁 사이를 걷는 어머니 곁에서 5리터짜리 주전자를 들고 뒤따른다. 눈치껏 한 모금씩 꿀꺽 마신다. 어차피 찰랑거려 넘친다는 이유를 마음속으로 중얼대면서. 그러니까 목이 말라 마시는 게 아니라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마시는 것뿐이라면서.
웬만한 시골집에서 술을 담그는 것은 장 담그는 것에 비할 만큼 흔한 일이었다. 일컬어 가양주(家釀酒)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막걸리는 사라졌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 도시락에 보리쌀이 섞였는지 검사하던 시절… 쌀로 막걸리를 담그는 게 금지됐다. 먹을 곡식이 부족한 형편에 술이라니. 하지만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운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이기도 했다.
지난 세월 우리 것을 괄시하고 서양 문물을 좇아온 풍토 속에서 막걸리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맥주가 도시의 술이라면, 막걸리는 농촌의 술이다. 맥주가 도시와 근대화를 상징한다면 막걸리는 가난했던 시대와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요즘은 농촌에서도 푸대접을 받는 형편이다. 못밥에서도 맥주가 막걸리를 밀어낸 지 오래 됐다.
사라질 뻔했던 막걸리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온 것은 등산객들의 공이다. 가을산은 단풍이 아니라 막걸리 때문에 붉은 듯하다. 주말이면 국내 유명산은 막걸리 냄새로 가득하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등산을 즐긴다는 통계가 나오는 요즘, 막걸리는 산에서 나와 도시에서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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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서울 강남과 홍대 앞에서 막걸리는 와인과 사케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족발과 머리고기가 아니라 안심 샐러드와 해산물 튀김이 막걸리와 함께하는 풍경이다. 촌티를 벗고 세련된 도시의 술로 변모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나는 와인 예찬론자가 아니듯 막걸리 예찬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막걸리의 부활이 반가운 것은 그것이 우리 음식의 제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우리 음식과 포도주의 궁합을 맞추려는 시도를 수상쩍게 생각한다.
우리 음식엔 우리 술이 최고다. 아니 ‘음식(飮食)’이란 문자 그대로, 먹고 마시는 것을 함께 일컫는 말이 아닌가? 음식을 굳이 영어로 표기하면 ‘Food’가 아니라 ‘Food&Wine’이나 ‘Food&Drink’가 옳다. 영어에서 ‘Food&Wine’은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관용어(Idiom)다. 서양 사람들은 와인을 일컬어 ‘드링킹 푸드(Drinking Food)’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막걸리와 전통주도 우리 음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다.
다시 살아난 막걸리의 인기와 유행은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한식 세계화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막걸리뿐 아니라 우리 술 전체를 되살려 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술과 음식이 제짝을 만나 한 몸이 되면 세계화가 더 빨라질 것 같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 필요하다. 우선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막걸리 공장의 경험과 기술을 모아 품질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와인 종주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게 좋겠다.
프랑스가 와인 종주국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정부가 체계적으로 품질을 관리한 덕분이다.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정부가 모든 농산물을 관리하기 시작한 프랑스는 1935년 국립원산지명칭연구소(Institut National des Appellations d'Origine)를 만들고, 프랑스 와인 등급의 기준이 되는 AOC 제도를 시행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와인은 크게 발전했고 전 세계 와인의 대표주자가 됐다. 이후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프랑스를 본뜬 품질 관리 제도를 도입했다.
이제 우리도 막걸리뿐 아니라 지방의 전통주를 되살리는 체계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글·손일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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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