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청자철채퇴화점문나한좌상(靑磁鐵彩堆花點文羅漢坐像·국보 제173호). 높이가 22.3cm인 이 도승상은 팔짱을 낀 채 나뭇결이 음각된 작은 경상(經床)에 의지하여 암좌(巖座) 위에 앉아 있다. 오른쪽 무릎을 반쯤 세우고 눈을 반쯤 뜨고서 망연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옷 주름은 깊은 음각선으로 표현하고 철화(鐵畵·철 성분의 안료로 그린 문양)와 백퇴점(白堆點)을 추가해 표현이 독특하다.
1950년대 강화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농사꾼인 유경해의 집으로 구하산방(九霞山房)의 홍기대가 찾아왔다. 유경해의 밭에서 푸른 사기 조각들이 무더기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그곳에서는 머리, 팔, 다리 할 것 없이 성한 것이 없는 청자 파편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홍기대는 쓸 만한 것이 나오면 연락을 달라며 주소를 남긴 후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굴꾼 유씨라는 사람이 홍기대의 집을 찾아와 강화도에서 큰 물건이 나왔다고 일러주었다. 당시는 일제 때 제정된 조선고적보존령(朝鮮古蹟保存令)이 아직 살아 있을 때여서 도굴꾼과 거래를 잘못하다가는 곧장 감옥행이었다. 홍기대는 관심없다며 그를 내쫓았다.
그런데 다음날 강화도에 갔다는 정판수가 홍기대를 찾아와 대단한 물건이 있으니 둘이서 반씩 투자하자고 독촉했다. 홍기대는 마음이 끌렸으나, 이미 소문난 물건이라 “거물급 사람을 내세우고 뒤에서 구전이나 먹자”고 정판수를 설득한 후 선우인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일제 때 구주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으로 해주 도청에서 고급 관리를 지내다가 해방 후 임관되어 법조계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유경해의 집으로 갔고 유경해는 깨진 도승상을 신문지에 싸가지고 나왔다. 선우인순은 급히 쪼가리를 붙여보았다. 비록 조각난 인물상이지만 대단한 물건이라 숨이 막혔다. 결국 이 청자 도승상은 선우인순, 홍기대, 장봉문 세 사람이 공동으로 구입했고 정판수에게는 사례비를 지불했다. 이후 홍기대는 도자기 수리 전문가인 송수복을 집으로 불러들여 수리를 부탁했다. 청자 도승상은 네 조각을 붙여 놓아도 연상 한 모퉁이가 콩알만하게 비어 있었는데, 홍기대가 유경해의 밭에서 거둬온 파편으로 끼워 맞춰보니 감쪽같이 맞는 것이었다. 수리를 끝내고 보니 조각으로 볼 때와는 다른 명품으로 변해 있었다. 세 동업자는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며 술 파티를 벌였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그러나 결국 유경해는 경찰에 입건되었고 선우인순에게도 형사들이 찾아왔다. 그는 “강화도에 내려가 물건을 본 것은 사실이나 깨진 조각이었고, 도굴한 것이 아니라 밭을 갈다 우연히 주운 물건이라고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형사들은 보관증과 사진을 가지고 되돌아갔다. 형사들이 돌아간 후 선우인순은 곧장 동업자인 장봉문과 홍기대를 불렀다. 그러나 겁이 많은 장봉문은 나타나지 않았고 홍기대 역시 손을 떼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인천 형사법원에 계류되어 1년 이상을 끌었고 결국은 김사만 변호사를 선임한 선우인순의 귀속으로 낙찰되었다. 유경해에게는 벌금 1만환이 부과되었다.
그 후 많은 거물급 수장가들이 선우인순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73호’로 지정받았다. 현재는 이 청자 도승상을 최영길이 소장하고 있는데 어떤 사연으로 그에게 옮겨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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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