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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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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정부의 석탄합리화사업 추진으로 보령지역 광산들은 줄지어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이 지역의 광산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그로부터 20여 년. 그저 쇠락한 탄광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폐광촌이 완전히 달라졌다. 폐광들은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는 냉풍욕장으로 탈바꿈하면서 ‘관광보령’의 상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으으, 추워! 빨리 나가자.” “누가 여가 시원하다고 했노? 추워 죽겠구먼….”

7월 1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에 자리한 ‘냉풍욕장’ 개장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이 일찌감치 모여들었다.

 

웰빙 열풍으로 더욱 인기
이곳 냉풍욕장에서는 갱도와 함께 땅 속에서도 차가운 바람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아무리 더위를 타는 사람일지라도 5분 이상을 버텨내기가 힘들 정도. 간혹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객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몸을 팔로 감싸 안은 채 밖으로 줄행랑치는 일이 다반사다.

친구들과 휴가를 왔다는 이미현(28·서울 강동구) 씨는 “여름 휴가철만 되면 꼭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며 “더위가 싹 달아나는 것은 물론 너무 추워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들려준다. 최공이(60·서울 마포구) 씨는 이빨까지 덜덜 떨며 냉풍욕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에어컨 바람이 아닌 자연바람이라 사람 몸에도 좋을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이날 냉풍욕장의 온도는 12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바깥 온도와 18도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시원했다. 여름철 사무실의 실내 적정온도가 20도 정도임을 감안하면 냉풍욕장으로 변신한 폐광의 내부가 얼마나 시원한지 쉽게 짐작이 갈 정도다.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이곳을 찾았다는 최진호(42·대전 유성구) 씨는 “터널을 따라 동굴 입구에 다다르면 더위가 문제가 아니고 추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이곳을 찾을 때는 반드시 긴소매 옷을 준비해와야 감기를 피할 수 있다”고 6년 베테랑답게 이용 요령을 귀띔해주기도 한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보령 냉풍욕장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단다. 농업기술센터 이정관 농촌관광과 계장은 그 이유로 ‘산소바람’을 꼽는다. 그는 “냉풍욕장의 바람은 산소를 머금고 있어 에어컨 바람보다 훨씬 더 차갑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웰빙 열풍으로 에어컨 등의 인공적인 바람보다는 이곳의 자연바람이 몸에 좋을 거란 생각에 피서객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박순옥(53·부산 사상구) 씨가 “냉풍욕장의 바람은 산소가 많은 탓인지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자 주변에 있던 관광객 모두 맞장구를 친다.

보령시 관계자에 따르면 7~8월에는 하루에 2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냉풍욕장의 인기가 높다. 게다가 대천·무창포 해수욕장을 찾는 대부분의 피서객도 이곳을 찾으면서 1996년 개장 이후 지난해까지 180만 명 이상이 다녀갔을 정도다.  

 

‘애물단지’에서 ‘돈단지’로
보령시 청라면과 성주면 사이의 성주산 일대에 펼쳐진 보령 냉풍욕장은 150여 개 폐광 중 17곳이 냉풍욕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령시는 지난 1996년 청라면 의평리 성주산 중간자락에 위치한 폐광에 길이 200m의 냉풍 유도터널을 만들었다. 찬바람이 분산되거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구를 측면에 설치하는 한편, 바닥도 말끔히 포장했다.

보령시는 올해 1억8000여만 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했다. 주차장을 확충하고 휴게실·화장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보령 냉풍욕장은 한꺼번에 2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며 하루 최대 5000명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농업기술센터도 3명의 직원을 상주시켜 관광객의 편의를 꾀하고 있다.

1989년 정부는 석탄산업의 채산성이 맞지 않자 석탄합리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에너지 정책의 변신을 선언했다. 전국의 탄광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무연탄 생산량의 15%를 차지했던 충남 성주산 일대 탄광도 예외는 아니었다. 150개나 되는 탄광들이 4년이 지난 1993년 모두 문을 닫자 많은 탄광 근로자들도 어쩔 수 없이 일터를 떠나야만 했다.

졸지에 문을 닫아야만 했던 많은 광산들은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인적이 끊긴 폐광들은 흉물스럽기조차 했다. 보령시로서는 고민거리였다. 폐광 입구를 막아보려 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뾰족한 수가 없어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손을 놓고 있을 때 보령시 농업기술센터가 폐광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폐광 갱구에서 내뿜는 바람이 12~14도의 온도에 신선한 산소와 알맞은 습도를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뜻밖의 사실을 알아낸 농업기술센터가 즉시 아이디어를 냈다. 폐광의 찬바람을 이용하면 버섯 재배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재배작목으로는 느타리버섯보다 값이 비싼 양송이버섯을 선택했다.

재배사업계획서를 작성한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은 광부 출신 주민들에게 양송이 재배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들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버섯 재배를 권유하자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고, 주민 한 사람이 먼저 발 벗고 나섰다. 그는 기술센터 지원금과 자신의 돈을 보태 60여 평에서 냉풍을 이용한 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4개월 뒤 냉풍 양송이버섯이 처음 생산됐다. 예상대로 품질은 매우 우수했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탄광을 떠났던 광부들이 버섯 재배를 위해 하나 둘 돌아왔다. 1995년 60여 농가에서 10년 만에 140농가로까지 늘어났다. 당연히 생산량도 많아졌다. 지난해 연간 2800t의 양송이버섯을 생산하면서 100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결국 이 지역주민들은 농가당 1억 원을 벌어들이면서 다른 농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더욱이 냉풍욕장이 이색 피서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양송이버섯 판매량도 늘고 있다. 냉풍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반드시 양송이버섯을 맛보고 돌아간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냉풍욕장과 양송이버섯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송이버섯은 유난히 하얀색을 띠는 게 특징이어서 주민들은 ‘하얀 보석’이라고 부른다. 양송이버섯 재배를 하고 있는 박정순(52·만불농장) 씨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주민에게는 생계에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다. 폐광은 우리에게 보물이나 마찬가지”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냉풍 양송이버섯, 관광상품 연계 대히트
보령시와 농업기술센터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냉풍욕장을 이용한 갖가지 수익사업에 몰두한 결과 최근 또 다른 결실을 맺었다. 냉풍을 이용한 개화 촉진 기술을 활용한 호접란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호접란은 밤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새집증후군 방지에 효과가 뛰어난 인기 작물이다.

이밖에 냉풍을 이용한 다른 제품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냉풍욕장에서 저온 숙성한 ‘참바라 쌀’은 보령을 대표하는 상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참바라 쌀은 냉풍욕장에서 쌀을 보관해 햅쌀 같은 밥맛이 큰 강점이다. 이밖에 지난해 9월 부터 판매되는 ‘냉풍 양송이 된장’도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버섯한우도 인기다. 버섯한우는 냉풍으로 키운 버섯 부산물을 사료로 먹여 키운 한우로 지역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최재영 기자

                 

냉풍욕 원리는?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여름에는 바람을 밀어내고 겨울에는 빨아들여

 

냉풍욕장의 갱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찬 공기가 더운 공기 쪽으로 이동하는 대류현상 때문이다. 따뜻한 공기가 있는 쪽은 공기 밀도가 낮아 가벼워지고(저기압), 찬 공기가 있는 쪽은 밀도가 높아 무거워진다(고기압). 이때 생긴 기압차로 인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면서 바람이 분다. 온도차가 클수록 바람은 더욱 세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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