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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이 없다면? 선수는 무기력해지고 관중은 승리에 대한 감흥이 훨씬 덜할 것이다. ‘응원’은 스포츠 경기의 필요충분조건이자 불가항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관중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며 열광한다. 응원은 관중과 선수를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응원 방식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진보했다. 단순히 승리에 대한 갈망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자기 개성을 표현한다.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B]검은 교복의 일체 응원과 대중가요 등장[/B] 지난 1970~80년대 초반의 응원은 ‘일체감’이 상징이었다. 당시에는 고교야구가 큰 인기였다. 삼삼칠 박수와 함께 “빅토리, 빅토리, V.I.C.T.O.R.Y”의 외침은 응원의 단골메뉴였다. ‘교가’ 제창도 빼놓을 수 없다. 고교생들은 똑같이 검은 교복을 입고 때로는 상의 단추를 풀어 하얀 와이셔츠를 보이며 상의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정렬된 일체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나 됨을 강조하기 위해 유난히 어깨동무 응원이 잦았다. 1980년대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응원의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연고팀을 두면서 응원 방법도 다양해졌다. 치어리더가 그 중심에 섰다. 초창기 대학 응원단 수준에 불과했던 치어리더는 1988년 올림픽 이후 전문 춤꾼(?)들이 투입되면서 응원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B]세계 초유의 길거리 응원[/B] 1990년대 들어서 축구·농구 등 프로팀이 속속 생겨나자 관중도 늘었다. 응원 열기는 ‘열정’에 가까울 만큼 폭발적이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과 응원구호를 플래카드로 만들어 내걸었다. 어깨동무 대신 ‘파도타기’로 일체감을 나타냈던 1990년대 후반에는 응원이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해졌다. 서포터스가 등장하면서 머플러에 손으로 말아 만든 ‘휴지폭탄’도 생겨났다. 원정경기에도 서포터스는 함께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응원문화의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이었다. 젊은층 위주의 응원문화는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했다.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파기하듯 수많은 여성이 응원문화에 동참했다. 페이스페인팅과 음악·율동 등을 스스럼없이 즐겼고,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했다. 그 결과 세계 초유의 ‘길거리 응원’을 만들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꿈★은 이루어진다” 등 명언을 남긴 ‘카드 섹션’은 응원의 백미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이미 막이 올랐다. 2002년 4강 신화 재현을 위해 다시 하나가 되자고 ‘대∼한민국’을 목놓아 외친다. [RIGHT]최재영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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