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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잃어버리고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운명이 된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위의 인용이 결코 ‘광장’에 나오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인용문은 최인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잃어버리고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은 실향민인 작가 최인훈이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의미하며, 가망 없는 남과 북의 화해를 의미하며, 발기발기 찢겨져 봉합될 수 없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청춘을 의미한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의 갈등은 바로 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월북과, 이후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통해서 명준은 계속 방관자로서의 태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광장의 부재를 실감하면서 국외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명준에게 ‘광장을 찾을 것’을 강요하는 사건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경찰서에서의 취조와 고문이다. 명준은 결국 이 사건 이후 월북하게 된다. 이것은 이후 명준의 행동 양식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명준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 따라 광장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삶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어떤 폭력을 피해 그 대안으로서 광장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이러한 한계는 결국 명준이 광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차 광장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가 찾아간 북쪽도 결코 ‘광장’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명준은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내려온다. 하지만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로 잡힌다. 포로 교환 때 명준은 남과 북 어디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도 선박 ‘타고르 호’를 타고 대양으로 향한다. 그는 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광장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광장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명준은 결국 그의 마지막 소원조차 이루지 못한다. 그는 결코 기억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그에게 남은 길은 무엇인가. 그 반대편에 있는 넓은 광장, 바로 바다 아니었을까. 명준은 역사 속에서 광장을 찾지 못하고, 그 반대편 원초적인 생명의 터전으로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광장’의 명준은 분단으로 상징되는 현대사가 우리 민족에게 요구했던 수많은 희생제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민족은 갈등 해소의 역정을 걸어왔고, 적지 않은 변화도 일구어냈다. 참여정부는 남북 화해 노력을 더욱 가속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숱한 장애를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얼마나 많은 명준을 역사의 제단 앞에 바쳐야 할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갈 길이 멀다 해도 포기하고 뒤로 돌아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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