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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캄캄한 밤 희미하게 뜬 달 아래로 포탄이 쉼 없이 날아갔다. ‘콰쾅’하는 폭음이 정적에 잠긴 강가를 뒤흔들었다. 조명탄을 터뜨리자 강물 아래로 시체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1951년 4월 임진강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임진강 전투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다.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유엔군의 지원으로 북한군을 격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1951년 1월 4일 북한에게 다시 서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국군과 유엔군의 합동작전으로 같은 해 3월 서울을 재탈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은 문산~화천 전선으로 투입돼 서울을 빼앗으려고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문산~화천 전선의 임진강은 서울을 지키는 물러설 수 없는 보루였다. 결국 1951년 4월 22~25일 임진강에서 짧지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주로 영국군으로 구성된 29보병여단은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의 3개 보병 대대, 벨기에의 1개 보병 대대 등 전력을 총동원해 중국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을 저지했다.

영국군 글로스터 부대 7백50명은 임진강 전투 중 퇴로가 차단돼 중국군 제63군 3개 사단 4만2천명과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영국군은 50여 명밖에 안 될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한 영국군들의 필사의 노력 끝에 중국군과 북한군의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마지막 한 발>은 이 전투에 참가한 영국 참전 용사 50여 명을 2년 동안 인터뷰해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지난해 4월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된 <To the Last Round>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워싱턴타임스> <더타임스> 등의 서울 특파원으로 10여 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저자 앤드루 새먼(Andrew Salmon) 씨는 “한국이 지금처럼 성장하게 된 것은 이런 역사 속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임진강 전투를 벌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잊혀져가는 전쟁의 기억에 작으나마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올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에 맞춰 발간된 이 책은 영국 참전 용사들이 체험한 전투 경험담을 통해 전쟁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참전 용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을 시간대별로 구성했고 북한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들도 담았다.

영국 참전 용사들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잊지 못했다. 특히 처절했던 임진강 전투는 그들에게 아픔이자 훈장으로 남았다. 그들은 “임진강 전투에서 사용한 포탄 수가 1970년대 독일군이 15년간 훈련용으로 쓴 포탄 수 2만3천 발과 맞먹었다”, “그 전쟁 때만큼 화려한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러나 영국 참전 용사들이 한국전쟁을 명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21세기 이후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였다. 그들은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다시 인생을 가치 있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책으로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저자는 영국군과 호주군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의 또 다른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다.
 

글·김민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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