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해외에서, 그것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스포츠 세계에서 생활하다 보면 저절로 애국심이 샘솟는다는 게 추신수의 얘기였다. 태극기 스티커를 붙인 가장 큰 이유는 경기 감각이 떨어지고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태극기를 보면서 힘을 얻기 위함이었는데, 부착물 금지 조항이 생기면서 더 이상 자신의 방망이에서 태극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기자는 미국 애리조나주 벅아이에 있는 추신수의 집을 방문했다. 미국 진출 10년 만에 장만한 추신수의 집에는 아내 하원미 씨와 아직 첫돌도 안 지난 건우, 그리고 다섯 살 난 무빈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추신수가 아들 무빈이에게 집에선 반드시 한국말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무빈이가 가끔 아빠한테 영어로 물어보면 못 들은 체 대답도 하지 않다가 다시 한국말로 질문하면 친절히 대답해준다는 것이다.
추신수는 훈련장에 일찍 출근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스프링캠프 때는 매일 저녁 8시에 취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내와 차를 한 잔 마시고 훈련장으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트레이너도 덩달아 새벽 5시에 훈련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하루는 그 트레이너가 추신수한테 “제발 부탁인데, 좀 늦게 나오면 안 되겠냐?”며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
트레이너로선 추신수가 팀의 중심 타자이다 보니 꼭두새벽 출근을 막을 수도 없고, 자신의 생체시계를 추신수에게 맞추자니 너무 벅차 고민 끝에 어렵게 얘길 꺼냈는데 결국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오전 6시 15분까지 나오기로 합의를 했다. 추신수는 새벽 출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계획대로 하루 일을 소화해내야 잠들 때 마음이 편해진다. 솔직히 유혹도 많다. 한 시간만 더 자고 나가자, 잠깐만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자, 이렇게 되면 당시엔 잠시 편할지 몰라도 하루 종일 찜찜하다.”
지난 5월 13일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 인터넷판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동료들의 도움이 부족해 외롭게 팀을 이끌고 있는 9명의 선수를 선정했는데 여기서 추신수가 9위로 이름을 올렸다.
타격 침체에 빠져 있는 클리블랜드에서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등 타격 주요 부문에서 팀 내 1위(5월 14일 현재 1백22타수 37안타, 타율 0.303, 홈런 4개, 19타점)를 달리고 있는 추신수의 활약을 극찬하면서 클리블랜드의 공격력 강화를 위해서는 다른 선수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추신수는 동료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올 시즌 감독님도 바뀌고 부상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면서 공격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고 본다. 팀 분위기는 어느 해보다도 좋다. 선수들이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도 사실이고 구단에 건의할 게 있으면 모두 날 찾는다. 선수들의 그런 반응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만에 빠질까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올 시즌 처음으로 붙박이 우익수 자리를 보장받으며 뛰고 있지만,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고 있다.”
팀의 기대대로 올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추신수는 19차례의 연습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타율 0.393, 홈런 3개, 16타점 등 불같은 화력을 선보인 후 시즌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하지만 시즌 초반엔 저조한 타율로 마음고생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긴장을 절대 늦추지 않는다.
“정말 야구는 잘 모르겠다. 조금 아는 것 같아서 잘난 척 좀 하면 금방 배신하고 돌아서는 게 야구다. 스프링캠프 때는 마음을 비우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래서 예상외의 좋은 성적을 거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시즌에 들어가니까 욕심이 생기더라.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고 상대 투수와 급하게 승부를 내려고 서두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던 시간이었는데 비교적 잘 극복해낸 것 같다.”
추신수는 시즌 전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2004년부터 에이전트 관계를 맺어온 앨런 네로와 결별하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로 평가받는 스캇 보라스와 새로운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것이다. 한국 야구팬들에게 스캇 보라스는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할 때 초대형 계약을 이끌어낸 능력 있는 에이전트로 알려져 있다. 구단 처지에선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협상 상대지만, 선수들한테는 최고의 파트너다.
“단순히 높은 몸값을 챙기기 위해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은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로 성장하면서 자신이 어떤 에이전트와 일을 하느냐에 따라 구단에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유능한 에이전트인 만큼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클리블랜드 측도 내가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꽤 진장한 눈치였다.”
![]()
실제로 추신수는 시즌 전 에이전트를 통해 구단과 장기계약 협상을 벌였다. 클리블랜드 측이 제시한 추신수의 몸값은 5년에 2천만 달러 안팎. 그러나 스캇 보라스는 단호히 거절했다. 올 시즌 더 좋은 성적을 올려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추신수도 이 부분에 대해 공감했고 모든 계약을 에이전트에게 일임했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추신수는 병역 문제가 해결되면서 몸값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추신수는 일단 시즌 경기에만 충실하겠다는 각오다.
“태극마크를 다는 건 특히 나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한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우리 대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시안게임은 내게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되겠지만 지금은 시즌 중이니만큼 일단 좋은 성적을 올린 후 대표팀에 참가해야 더 의미가 클 것 같다.”
클리블랜드를 이끄는 ‘추추 트레인’ 추신수. 그가 올 시즌 목표로 세운 30-30클럽을 달성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그의 거침없는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다.
글·이영미(일요신문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