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추석. 올 귀향·귀성길은 또 얼마나 막힐까? 고속도로가 차량으로 꽉 차 오도가도 못하는 것도 답답한데 올해는 껑충 뛴 기름값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게 생겼다.
그나마 배럴당 150달러를 향해 달려가던 국제유가의 오름세가 꺾여 다행이다. ℓ당 2000원을 넘어섰던 휘발유·경유값이 1600원대로 내려갔으니. 그래도 차가 서 있다시피 하면 자동차 연료 게이지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명절 때 고향 가는 길은 기차나 고속·시외버스가 일반적이었다. 열차표를 사기 위해 전날부터 밤을 꼬박 새우며 줄을 서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좌석을 구하면 운이 좋은 것이고.
그런데 요즘은 고속버스의 경우 예매하지 않고 터미널에 가도 한두 시간 기다리면 차를 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이 좀 막혀도 자가용을 타고 가기 때문이다. 거의 1가구 1차 수준인 마이카 시대가 몰고 온 변화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는 1642만8000대. 이 중 자가용이 1549만6000대로 100가구 중 94가구가 자가용을 갖고 있는 셈이다. 1970년만 해도 4만6000대로 100가구당 1대꼴이었던 자가용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이 중 승용차는 1167만4000대로 자가용 10대 중 7.5대꼴이다.
60년 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전국의 자동차는 1만2300대에 불과했다. 그나마 전부 수입차였다. 1955년 국내에서 처음 만든 ‘시발(始發)자동차’가 나왔는데, 6·25 전쟁 때 쓰던 미군 지프를 개조해 만든 수준이었다. 그래도 첫 국산차라 인기를 끌어 자가용이 늘어나고, 그 여파로 기름값 파동이 일자 놀란 이승만 정부가 승용차 생산을 규제하기도 했다.
승용차 보급이 재개된 것은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나오면서다.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하며 국민소득이 높아지자 차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었다. 때맞춰 1975년 현대차가 첫 국산 모델 ‘포니’ 승용차를 내놓으면서 마이카 붐이 일었다.
1980년을 전후한 2차 오일쇼크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도 위기를 불러왔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공급과잉 상태를 빚었다. 1981년 전두환 정부는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는 현대와 대우가, 상용차는 기아가 생산하는 식으로 교통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보급도 주춤하다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합리화 조치를 해제하자 마이카 붐에 본격 시동이 걸렸다. 자가용 비중은 1992년 60%를 넘어섰고, 2007년 70%대로 높아졌다.
1955년 1만8000대였던 전체 자동차는 52년 만인 2007년 913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가용 승용차는 3000대에서 3891배로 불어났다. 국제유가의 급등세야 꺾였다지만 3차 오일쇼크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모두 자동차 연료로 들어가진 않지만 우리나라 연간 원유 수입량은 8억7000만 배럴. 국제유가가 110달러면 연간 957억 달러가 들어간다. 우리가 10% 절약하면 95억 달러, 20% 절약하면 190억 달러다. 추석 연휴 고향 가는 길, 에너지 절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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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