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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끝내 투표한 유권자보다 기권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4월 9일 18대 총선 투표율은 46.0%. 지역별로 실시하는 재·보궐 선거를 제외한 역대 전국 규모 선거 사상 최저 기록이다. 대학 학점으로 치면 겨우 낙제를 면한 ‘D’ 수준이다.

우리 국민의 총선 학점이 처음부터 이리 나쁘진 않았다. 1948년 5월 10일 역사적인 초대 제헌 국회의원을 뽑는 첫 민주주의 선거를 치를 당시 투표율은 95.5%였다. 확실한 A+ 학점이다. 2대(1950년), 3대(1954년) 총선까지 투표율은 90%를 웃돌았다. 총선 투표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치사와 맥을 같이한다. 1958년 4대 총선부터 투표율은 80%대로 내려갔고, 1960년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으로 앞당겨 치른 5대(1960년) 총선까지 80%대를 지켰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3년 6대 총선부터 전두환 군사정권 초기인 1981년 11대 총선까지 투표율은 70%대를 맴돌았다. 1985년 1월 군사정권 아래서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던 민주 인사들이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 해 2월 치른 12대 총선 투표율이 84.6%로 쑥 올라갔다.

투표율은 13대 총선부터 다시 급강하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50%대로 추락한 투표율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에 대한 역풍이 불면서 60%대를 회복했다가 이번 18대 총선에서 다시 급락, 40%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투표율 하락 현상은 지구촌 거의 모든 민주국가의 골칫거리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투표율 하락폭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서구 민주국가의 하락폭이 약 8%포인트인 반면 한국은 그 배인 15%포인트였다.

더구나 공원·박물관·공영 주차장을 이용할 때 2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투표 확인증을 주는 인센티브까지 처음 도입한 이번 총선에서 하락폭은 더 커졌다. 4년 전 17대 총선보다 14.6%포인트, 역대 총선 중 가장 낮았던 16대 총선보다 11.2%포인트나 급락하면서 급기야 기권율이 투표율을 앞질렀다. 50%의 득표율로 당선돼도 실제 얻은 득표수는 전체 유권자의 23%밖에 안 된다. 이 정도면 선거의 대표성 시비가 일 만하다.

인센티브에도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으면 의무투표제나 패널티를 물리자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된다. 상당수 국가에서 투표 참여를 이끄는 데는 인센티브보다 불이익을 주는 게 효과적이라며 제재를 가한다. 싱가포르는 기권자를 선거인명부에서 말소 처리하며 5싱가포르달러(약 3500원)을 내야 권리가 회복된다. 20~50달러씩 벌금을 매기는 호주의 투표율은 95% 수준이다. 선택은 유권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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