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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지갑이 뚱뚱한 사람을 보면 현금이 두둑해서가 아니라 신용카드를 여러 장 꽂고 다녀 그런 경우가 흔하다. ‘신용카드’가 많으니 신용도 높은 사람일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선 이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선진국과 달리 일정한 소득이 없어도, 금융거래를 통해 신용을 쌓지 않아도 카드를 발급해 주기 때문이다.

무서운 신용카드 1억 장 시대가 다시 닥치고 있다. 2007년 9월 말 현재 발급된 신용카드는 총 9215만2000장. 2002년 카드대란 당시 1억480만 장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가 줄어들던 것이 2006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3.8장꼴이다.

지갑에 평균 넉 장씩 넣고 다니는 카드를 다 쓸 리 없다. 1년 이상 사용실적이 전혀 없는 휴면카드가 2006년 말 공식 통계로 2999만 장에 이른다.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장롱카드’가 전체의 3분의 1이나 된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카드업계의 회원 확보 경쟁은 멈출 줄 모른다. 모집인과 은행 직원에게 목표를 할당한다. 서로 자기네 할인혜택과 부가서비스가 낫다고 내세운다.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6년 전 카드대란 때와 같은 길거리 모집 행위는 하지 않는다지만 경쟁사 간 카드 스와핑(가입 맞교환)이나 모델 하우스 판촉 행위가 되살아났다.






사용하든 장롱 깊숙이 넣어놓았든 카드 찍어내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든다. 우선 공(空)카드에 정보를 넣어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데 구식 마그네틱 카드가 한 장에 250원~300원, IC칩 내장 카드가 1500원~3000원이다. 후불 교통카드 기능을 넣자면 2500원이 추가된다. 여기에 카드 디자인 비용, 해외 제휴 카드사에 지급하는 로열티, 인지세(1000원)와 배송비를 합치면 적어도 5000원, 많게는 2만5000원이 든다. 게다가 카드발급 비용이냐, 마케팅 비용이냐의 논란이 있지만 어차피 고객 부담으로 돌아가는 카드 유치수당이 건당 3만~4만 원이니 카드 한 장이 나오기까진 3만5000원~6만5000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와 같은 발행 단가에 휴면카드 2999만 장을 곱하면 적어도 1조496억 원 내지 1조9493억 원의 비용을 잡아먹은 것을 그냥 장롱 속에 처박아 두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휴면카드를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카드사들이 움직이고 있다. e-메일이나 전화, 문자 메시지로 고객에게 휴면카드 보유 사실을 알린 뒤 카드를 없애고 싶다고 하면 해지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카드사에선 포인트가 남아 있다거나 경품을 준다며 카드 해지를 막고 있다.

이참에 고객들은 똑똑한 카드 한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확실하게 가위로 잘라 버리자. 그게 카드사도, 고객도 함께 사는 길이요, 나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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