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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여자 프로농구 챔피언전 두 번째 MVP 전주원






 

지난 4월 6일 경기 안산시 와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THE Bank, 신한은행 2009-2010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5전 3선승) 4차전. 신한은행이 삼성생명을 78 대 72로 꺾고,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4년 연속 통합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지난 시즌이 오버랩된다. 경기 중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전주원의 이마가 찢어졌다. 핏물이 흘렀다. 늘 웃는 낯이었던 그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벤치로 들어간 그는 이마에 붕대를 감고 다시 코트에 섰다. 신한은행을 승리로 이끌고 인터뷰실에 들어선 전주원에게 물었다.

“정규시즌 한 경기 안 뛴다고 우승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뛰냐?”고. 그는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부상 축에도 못 낀다”며 웃어 넘겼다.
 

하지만 올 시즌엔 ‘부상 축에 끼는’ 부상을 했다. 지난 2월 전주원은 왼쪽 무릎 반월판 연골이 찢어졌다. 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걷는 데도 통증이 있었다. 2월 18일 비밀리에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후배들에게 영향을 줄까봐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6주 이후에야 코트에 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주원은 또다시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챔피언 결정전 출장을 강행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년이면 나도 학부형인데…. 내가 미친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올 시즌 신한은행은 ‘부상 병동’이었다. 특히 주전가드 최윤아와 센터 하은주는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무릎 부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 4차전을 앞두고 전주원의 수술 사실이 보도되자 누구도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전주원은 코트에 서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 투지를 불어넣은 셈이다. 최윤아는 “수술을 하고도 저렇게 뛰는데 내가 (무릎이) 아픈 것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다. 앞으로 언니 같은 선수는 다시 못 나올 것”이라고 울먹이며 우승의 공을 전주원에게 돌렸다.

전주원은 몸을 내던지는 이유에 대해 “딸 수빈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운동선수 엄마를 둔 탓에 수빈이는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시즌을 마친 전주원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수빈이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유치원을 보내는 일이다. ‘누룽지를 만들어주고, 뜨거운 밥에 김을 싸서 먹이는 행복’을 이제야 실감한다. 하지만 딸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하는 길은 오히려 운동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수빈이가 ‘엄마는 나도 잘 못 챙겨줬으면서 운동까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출산 이후 ‘부상 투혼’은 전주원의 단골 ‘레퍼토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주원은 2004년 임신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신한은행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도 최후의 5분을 남기고 급격히 무너졌다. 팀을 이끌 노련한 선수가 없는 탓이었다. 결국 신한은행은 전주원에게 SOS를 쳤다. ‘아무리 전주원이라도 출산 이후 옛 기량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우려의 시선도 물론 있었다.

1991년 실업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전주원은 늘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군림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국내 선수 중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에선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정상 문턱에서 정은순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던 삼성생명에 덜미를 잡혔다. 실업 10년차가 돼서야 첫 우승의 영광을 누렸지만 MVP는 언감생심. 그래서 전주원이라는 이름 앞에 붙었던 달갑지 않은 수식어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그러나 2005년 복귀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4년 연속 통합 우승과 한 번의 정규리그 MVP, 두 번의 챔피언 결정전 MVP. 이 모든 것이 은퇴 번복 이후 얻은 성과다. 전주원은 “수빈이를 얻은 다음에 우승복과 상복이 터졌으니 수빈이가 복덩이인가 보다”며 웃었다.

1972년생인 전주원은 현재 신한은행의 선수 겸 코치. 1990년생, 18세 연하인 팀 동료 김단비에겐 전주원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그의 호칭은 ‘코치님’ 또는 ‘선생님’이다. 전주원은 김단비를 보면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으면 너만 한 딸이 있다”고 농담을 던진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 스스로도 “길어 봐야 선수생활은 1년에서 2년”이라고 못 박는다. 이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력 유지. 비법은 있다. 전주원은 경기 전날 냉탕에 20분가량 몸을 담근다. “근육을 수축시켜 피로를 푸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설명. 2007년 신한은행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태즈 맥윌리엄스(40)에게서 배운 ‘회춘(?)법’이다. 이제는 전주원뿐 아니라 강영숙(29) 등 후배들도 전주원과 함께 냉탕 속으로 ‘풍덩’ 한다.

또 한 가지 비법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웨이트트레이닝이다. “나이가 들면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지기 싫어 더 이를 악문다”고 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신한은행은 비(非) 시즌 때 계단 오르내리기 등 체력 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전주원은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한다.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은 “노장이 되면 강도 높은 훈련에서 열외를 시켜주기도 하지만 전주원은 스스로 알아서 훈련에 참여한다”며 흐뭇해했다.

전주원에게 마지막 목표를 물었다.

“이제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더 빛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동료들에게 더 나은 슛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도움(어시스트)을 주는 것이 주 임무다. 20년간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도우미였던 전주원.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보다는 팀을 빛나게 하는’ 조연을 꿈꾸고 있었다.
 

글·전영희(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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