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밀양’(密陽.영어제목 Secret Sunshine)에는 빛이 가득하다. 첫 장면의 푸른 하늘부터 비밀스러운 햇볕이 땅 위로 내려오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빛을 보여준다. 빛의 의미는 막연하고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빛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상실과 좌절의 고통을 통해서 이야기는 흡인력을 가진다.
신애가 아들을 데리고 낯선 도시 밀양에 가던 중 도시 초입에서 차가 덜컥 서 버렸다. 차를 고치러 온 카센터 사장 종찬에게 신애는 밀양이 지닌 속뜻을 들려준다. 비밀스러운 빛이라고. 일상에서 남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신애를 보며 종찬은 신선한 바람을 느낀다.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는 낯선 도시에서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신애의 뒤를 바짝 따라 다닌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사고로 죽은 남편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도시. 그곳으로 이사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며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보려는 여자. 그 뒷모습이 허방을 딛듯 허허롭다.
땅을 사겠다는 허세를 사실로 착각한 학원 원장의 엉뚱한 탐욕에 걸려 아들은 유괴돼 죽는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굳어 있던 신애는 교회 부흥회에 가서 잠시 위안을 얻는다. 유괴범의 딸을 보며 아직 똬리를 틀고 있는 분노는 외면한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그 사랑을 전하며 유괴범을 직접 용서하겠다고 찾아간다. 신애는 자신이 극적인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았다는 유괴범의 확신에 밀려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영화의 끝, 신애는 이제 하늘을 노려보지 않고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본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은 강렬한 감정이입으로 온갖 절절한 몸짓을 보여주며 시선을 붙잡는다. 그 혼신을 다하는 연기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뼛속 깊이 안고 사는 사람에게, 기억을 끄집어 올리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동력을 지니고 있다. 송강호의 연기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싶게 종찬이란 인물을 딱 맞게 살려내고, 머리를 자르는 신애에게 거울을 받쳐주듯 이 영화의 의미와 정서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는 동안 영화의 여운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뻐근한 경외감을 안게 된다.
이창동 감독은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란 소설에서 영화 ‘밀양’을 착상했다. ‘밀양’은 주제가 집약된 소설과 다른 전개를 보이며 영화로서 풍성하고, 소설은 광주항쟁의 피해자 이야기를 암시하며 용서의 의미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용서하고자 하던 사람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를 직접 만나면 오히려 용서하기가 힘들어진다. 대면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1994년 르완다 내전에서 살아남은 임마쿨레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 이름은 임마쿨레>(임마쿨레 일리바기자, 스티브 어윈 공저, 김태훈 옮김, 2007년)로 전해준다. 그녀는 대학살의 와중에 친분있는 목사의 도움으로 작은 화장실에서 석달 동안 일곱 명의 여성들과 숨어 살았다. 스물두 살 여성의 체중이 29kg으로 줄어드는 굶주림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시작한 영어공부로 그녀는 현재 뉴욕 UN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처참하게 살해된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면서도 가톨릭신앙으로 가족을 죽인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임마쿨레의 새로운 과제는 르완다의 비극에서 증오와 불신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사람들에게 용서가 지닌 치유의 힘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용서의 문제는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한 국가의 평화, 또 인류 전체의 연대에 이르게 하는 든든한 초석이다. 용서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정혜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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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