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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배영희 교수의 음식 이야기 | 미숫가루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아~~~ 더워! 시원한 거! 시원한 거 없어요?”
한여름 학교에서 돌아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더~~워’를 외치면 엄마가 우물물에 미숫가루를 탄 시원한 사기사발을 내미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엄마표 미숫가루를 마시고 우물물을 두세 번 쫙쫙 끼얹고 대청마루에 누우면 더위는 싹 가시고 매미소리 속에 스르르 잠들던 기억 속의 음식….
얼음 동동 띄워 마시는 고소한 미수는 시원하기도 하지만 급히 허기를 달래는 데도 그만이던 우리네 마실 거리(物)다. 요즈음 단어인 ‘음료’라고 넣기에는 싫은 귀한 음식이다.

‘미숫가루’는 쪄서 말린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뜻하는 ‘미시’와 ‘가루’가 합쳐진 말이다. ‘미시’ 자체가 쪄서 말린 가루를 뜻하므로 ‘미싯가루’는 ‘가루’란 말이 중복된 모양새다. ‘미수’는 중세 국어에 ‘미시’로 나오며 ‘미시’는 지금의 ‘미숫가루’와 같은 의미로 쓰였고 ‘미시’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만주어 ‘musi’로 보기도 한다. 예전에는 ‘미시’ 또는 ‘미싯가루’를 표준어로 삼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수, 미숫가루’로 발음하기 때문에 발음이 바뀌어 ‘미수’와 ‘미숫가루’를 이제는 새로이 표준어로 쓰고 있다. 미숫가루는 찹쌀·멥쌀 또는 보리쌀을 쪄서 말린 다음 반드시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이기 때문에 녹말이 생것의 상태에서 호정화(糊精化)된 상태로 되어 물에 분산이 잘되고 소화도 잘된다. 이 때문에 미숫가루는 과거판 인스턴트식품이자, 20세기 화두인 다이어트식품이라 불러도 좋은 식품이다.

찌거나 볶지 않고 날것을 갈아 만든 것은 미숫가루라고 하지 않고 ‘생식’ 또는 ‘선식’이라고 한다. 이는 과거 신라의 화랑들이 수련할 때 간편하게 가지고 다녔던 영양이 풍부한 자연건강식의 하나로 7가지 곡식(현미·찹쌀·보리쌀·검정콩·검정깨·들깨·율무)를 섞어 만들었다. 그 후 승려나 수도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토굴 참선 등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던 고단백 영양식으로 이어지다가 편리함과 영양가가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즐겨 먹는 식품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미숫가루도 이에서 유래된다.

콩을 날것인 채로 갈아보면 비릿한 맛 때문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미수는 곡류의 특성에 따라 살짝 찌거나 볶아 생것이 가진 독성을 제거해 주고 맛 또한 부드럽고 고소하게 만든다.

주변의 보리, 현미, 멥쌀, 백태, 옥수수, 밀, 검정콩, 검정쌀, 검정깨, 찹쌀, 율무, 차조… 등 어떤 것이든 미수는 될 수 있지만, 주로 좋아하는 곡류 위주로 혼합하여 만든다. 입 안에서의 보드라운 촉감과 물 위에 살짝 떠오르는 하얀 가루 모양새가 고와 미수 중 ‘찹쌀 미수’를 제일로 치기는 하나 고소하기로는 보리를 간 ‘보리 미수’가 최고다.

멥쌀, 찹쌀, 보리, 밀, 율무, 찹쌀현미 등은 쪄서 말려서 살짝 볶은 후 분쇄하고, 검정콩과 흰콩, 깨 등은 마른 행주로 닦아서 타지 않을 정도로 고소하게 볶아 갈면 된다. 간 미숫가루는 설탕과 섞어 물에 타 마시거나 우유에 타도 맛이 좋다. 설탕 대신 꿀을 넣으면 달콤 쌉쌀한 고유의 꿀맛이 느껴져 더욱 맛있고, 미숫가루에 얼음을 살짝 넣는 센스는 기본이다.

얼마 전 한 기업연수원을 방문했을 때 단체급식 후 정수기 옆 항아리에 ‘후식입니다’란 글귀가 보여 국자로 떠보니 미숫가루였다. 조리장이 급식하고 남은 밥을 바짝 말려 볶은 후 빻아 미숫가루로 마실 거리를 만들어 주니 한국의 맛 숭늉을 여름에 맞춰 시원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오산대 호텔조리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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