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소심한 말단 공무원이 극장에서 만난 장관 머리에 대고 심한 재채기를 한다면? 겁 많은 엄살쟁이 사제와 돌팔이 치과의사가 만난다면?
이처럼 아찔하거나 혹은 엉뚱한 상황이 실제 일어났다. 지난 5월 1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고봉정보통신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대강당에서 소년원 학생들이 출연해 선보인 연극 <굿 닥터>(The Good Doctor)에서다.
<굿 닥터>는 러시아 희곡작가 안톤 체홉이 젊은 시절 신문에 연재한 짧은 이야기를 미국의 코미디 작가 닐 사이먼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서 만든 풍자극이다.
이 밖에도 공원에서 처음 만난 두 노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늦은 행복’, 마음씨 착한 가정교사와 월급을 주지 않으려는 주인의 신경전을 다룬 ‘가정교사’ 등 6편의 에피소드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날 연극의 총 연출자는 바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전 장관은 장관 재직 시설 생각했던 봉사를 실천하려고 퇴임 직후 적당한 곳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알게 된 곳이 서울소년원이다.
이곳은 6개월~2년 보호처분을 받은 10대 비행청소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유 전 장관이 이 학교에서 연극반 지원자를 모집하자 순식간에 20여 명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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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란 명함을 내려놓고 순수 연극인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3월 7일부터 10회가량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극지도를 했다.
공연을 하루 앞둔 5월 11일에는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연습을 해 오후 9시가 돼서야 지도를 끝냈다.
유 전 장관을 처음 만났을 당시 아이들 절반 이상은 꿈이 ‘없다’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장관, 가정교사, 치과의사, 건달, 경찰관, 매춘부, 아들과 아버지 등 배역을 맡아 연습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달라졌다. 세상으로부터 낙인이 찍힌 아이들이었지만 연극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공연 날엔 관객 앞에 당당히 섰다. 물론 아이들의 대사 전달력과 감정 표현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굿 타임>은 보통 연극과는 분명 달랐다. 서툴지만 울림이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그간의 준비 과정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유 전 장관과의 첫 만남부터 대본 연습, 동선 짜기 등 그들의 준비과정을 지켜본 학부모와 멘토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연극 무대에 오른 학생들은 “연극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앞으로의 삶이 달라질 것 같다”, “처음에는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 함께 노력해 성공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재채기’ 에피소드에서 공무원 역을 맡았던 최지훈 군(가명)은 “그저 시간이 빨리 갈 거란 생각에 신청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장관님으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지만 연극 공연 후 생각해 보니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잔소리였던 것 같다”며 웃었다.
유 전 장관은 아이들의 공연이 끝난 후 이귀남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유 전 장관은 “입시에 관련된 교육에만 집중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오래전부터 해주고 싶었다”며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에게 먼저 문화예술 교육이 전해져야 한다고 평소 생각했었기 때문에 소년원 친구들과 함께하게 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 전 장관은 “한 나라의 정부부처 장관을 3년이나 하고 나와 곧바로 상업적인 행위를 한다든지 광고를 찍는다든지 내 일을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적어도 3~5년은 그동안 받은 것을 국민들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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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에 나선 다른 전직 장관들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23일 서울 구로아트밸리 갤러리에서 국내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1백 인의 예술가를 ‘2011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공식 위촉했다. 가수 인순이, 디자이너 이상봉,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 지휘자 금난새 등과 함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위촉장을 받았다.
이 전 장관은 2010년에 이어 2년째 문화예술 명예교사가 되어 어린이, 청소년, 지역민, 군부대 장병 등을 대상으로 재능나눔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 밖에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박범신 소설가,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이금희 아나운서 등과 지난해 12월 1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재능기부 선포식을 하고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개운중학교 연극 연습실에서 중학생 아이들의 연극을 지도하기도 했다.
당장은 봇물 같은 흐름이 아닐지라도, 이들 전직 장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기부가 이어져 물방울이 물줄기가 되고, 그 물줄기는 도도한 물흐름이 되어 분명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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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