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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전문기술 내세워 농촌현장서 자원봉사




전직 공무원이었던 이재룡(63)씨는 요즘 봉사활동에 푹 빠져 지낸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국장까지 지낸 이씨는 퇴직 후 많은 기업들의 취업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이씨는 “공직생활을 많이 했으니 이젠 봉사만할 것”이라며 “기업에서 일하면 수입은 많겠지만 후배들에게 부담 주는 일이기도 하고 몸담았던 기관에 마이너스 되는 부분도 있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녹색기술 시니어자문단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9년 10월 농촌진흥청은 농촌진흥기관 퇴직자 모임인 ‘농진회’를 녹색기술 시니어자문단으로 위촉했다. 퇴직공직자들의 풍부한 경험과 축적된 전문지식을 농촌현장에 활용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들 자문단은 영농현장 모니터링, 해외 농업기술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수는 전국 1천2백여 명이다.




이씨는 녹색기술 시니어자문단으로서 영농현장 모니터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지역 현장의 애로사항을 농촌진흥청에 전달하는 등 현장 지원을 돕고 있다”며 “퇴직 후 직접 황매실과 약초 등을 기르고 있다. 이를 통해 미생물을 이용한 녹색기술 농업을 연구하고 주변 농업인들에게 녹색기술을 전파하는 현장학습의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농현장 모니터위원은 농촌진흥청 고객지원센터의 민원처리를 도와준다. 이들은 농촌진흥청 홈페이지 내 커뮤니티 ‘사랑방’을 통해 지역의 영농동향과 현장의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불필요한 규제와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국 1백86명의 모니터위원이 활동중이다. 대부분이 지역 농민들이지만 퇴직공무원 18명이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 퇴직공무원 출신의 모니터 위원들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특별히 현장지원도 돕는다. 농촌현장지원단이 민원처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할 경우, 각 지역에 사는 이들이 현장에서 기술자문을 맡고 있다.

농촌진흥청 고객지원센터 고창호 농촌지도사는 “지난해 퇴직공무원 출신 모니터위원들의 현장 지원은 1백83건이었다”며 “전문 지식이 풍부한 이들이 중간에서 모니터링을 잘해 줘서 민원 처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룡씨는 모니터위원 활동과 함께 개별 봉사활동도 한다. 농촌 지도직을 담당해 온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한 노인교육을 하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2009년 퇴직한 후 3년째 노인 대상 강의 봉사를 해 오고 있다. 일주일에 2번, 노인복지회관에서 농사체험 등의 노인체험활동과 건강관리법, 과일선택법 등 생활정보를 가르친다.

“요즘 농촌이나 도시 모두 노인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분들에게 농사체험 등의 교육을 통해 건강하게 사는 법을 알려드리고 있죠. 제가 강의를 나가는 분당도 원래 농촌이었습니다. 이곳이 개발되면서 노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어요. 이분들이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도시농업을 전파하고 있죠.”

그의 강의는 주부들도 많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씨는 “베란다, 옥상 등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상추, 고추 등 채소를 재배하는 도시농업은 요즘 화두”라며 “스위스의 시민농원처럼 도시농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요즘 생활이 즐겁다. 퇴직 후 전문성을 살린 봉사활동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녹색기술 시니어자문단 정금주(66)씨도 재능기부를 통해 삶의 보람을 찾고 있다. 그는 국립농업과학원 농촌자원개발연구소장으로 근무한 후 2004년 퇴직했다. 퇴직 후 모교인 서울대 농업대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장학재단의 설립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 후 2009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국내 퇴직공무원을 개발도상국으로 파견하는 해외 봉사에 지원했다.

정씨는 “농촌생활지도직을 담당하며 한국 농촌 여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은퇴 후 해외에서 그런 일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2년에 걸쳐 6개월간 미얀마에 머무르며 새마을운동 사업을 벌였다.

“제가 갔던 미얀마의 케양이라는 곳은 우리나라 1960년대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농촌 마을이었어요. 이들은 주로 움막집에 사는데 의식주 개선이 필요했죠. 저는 농촌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개선전문가로 파견돼 다른 농업 전문가들과 함께 새마을운동사업을 지원했어요.”

정씨를 포함해 총 9명의 농업전문가들이 파견됐다. 이들의 지도 아래, 미얀마 농촌이 변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새마을운동 구호인 ‘근면, 자주, 협동’을 외치며 미얀마 농촌 주민들이 서로 협동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여기에는 부녀자들의 힘이 굉장히 컸다”고 말했다.


그는 케양 새마을부녀회를 조직하고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등 영양교육도 실시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은 마을의 이장 부인인 민미찌(36) 씨였다고 한다. 민미찌 씨는 정씨가 떠나는 날 “저도 우리 아이를 선생님처럼 훌륭히 키우고 싶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도 농촌영양개선 사업을 할 때 해외 지원을 많이 받았어요. 해외 지원을 직접 받았던 세대로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쪽의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이 있으면 참여할 계획입니다. 몸만 건강하면 70세 전후까지는 계속 활동하고 싶습니다.”

글·이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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