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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더 늙기 전 고국으로 봉사하러 왔어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양호교사였던 윤행자(70)씨는 1969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 없이 홀로 키우는 어린 남매를 위해 파독 간호사 1기로 먼길을 떠났다. 윤씨는 쾰른 근처 보쿰의 한 병원에 배정돼 43년 동안 근무했다. 그 사이 독일 적십자사가 주관하는 수간호사 시험에 외국인 최초로 합격했고, 현재의 남편 페터 피셔(75) 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결혼할 때 각자 데리고 온 4명의 자녀가 있다.

윤씨는 “네 아이 모두 대학 졸업 후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데리고 간 남매 중 아들은 현재 LG연구소에 근무 중이고, 딸은 독일에서 사업가로 살고 있다. 윤씨는 “딸아이는 88올림픽 당시 연세대에 유학하며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고 자랑했다.




한·독간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진(65)씨는 청주간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7년 독일로 갔다. 다른 회원들과 달리 유학을 떠난 김씨는 쾰른에 있는 한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그곳에 있는 인공투석 전문병원에서 2009년까지 간호부장으로 근무했다. 김씨는 1970년 현재의 남편 한스 페이터 씨와 결혼했고,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아들은 독일계 화학기업 랑세스(LANXESS)에 근무중이다.

두 사람 외에 설경자(59), 윤영자, 김정자, 지화순씨 등이 함께 박람회장에서 안내 겸 통역 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5월 1일 귀국해 수차례의 예행연습을 마친 후 현장에 투입됐다. 여수엑스포 자원봉사자로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부회장인 김씨의 답변이다.

“제가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이에요. 지난해에도 방한했는데, 여수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여수엑스포 자원봉사자 모집’ 현수막을 봤습니다. 협회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일로 돌아가 회원들에게 얘기하니 모두가 ‘더 늙기 전에 고국에 가서 봉사하자’고 흔쾌히 동의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경력 40년 이상의 베테랑 간호사들이다. 박람회장 내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응급처치할 만반의 준비도 갖추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심장내과에서 근무한 김정자씨는 “응급처치에 자신 있지만 엑스포가 끝날 때까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협회장인 윤행자씨는 남편과 함께 왔다. 남편 페터 피셔 씨는 독일기술학교(2년제 대학) 교수 출신이다. 그는 “아내 못지않게 한국과 김치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며 웃었다. 이번 엑스포에 대해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IT기술에 다시 한 번 놀랐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동시에 “시설과 기술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나 뒷마무리가 꼼꼼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애정 어린 지적도 잊지 않았다. 서둘러 공사를 하다 보니 세심한 부분에서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5월 18일까지 일주일 동안의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6월 초에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윤행자 회장은 “이번 엑스포 덕분에 파독 간호사로 떠나던 40여 년 전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자부심을 갖고 독일에 가게 됐다”며 “독일에 돌아가서도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들이 임원으로 활동 중인 한·독간호협회는 2009년 독일 루르 지방에 거주하는 파독 간호사 70여 명이 친목 단체로 결성했다. 본, 쾰른, 보쿰 등에 흩어져 사는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으며 독일에 거주하는 나이 든 한인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추석이나 설과 같은 독일의 명절 때면 강강술래나 풍물놀이 등을 통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김현진 부회장은 “독일 전역에는 현재 2천여 명의 파독 간호사들이 거주하고 있다”며 “이분들과 힘을 합해 앞으로도 고국을 위해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국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글·서철인 기자


여수엑스포 해양문명도시관에 가면 프랑스에서 온 대학생 엘로디(25)가 환한 미소로 관람객을 맞는다. 프랑스 파리의 대학에 다닐 때 일본어를 전공했다는 엘로디는 지난해 10월 한국에 와 겨우 7개월이 지났는데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한다.

한국말을 잘하네요. 따로 배웠나요?
원래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어요. 일본 TV 방송이나 신문을 자주 봤는데 우연히 아이돌그룹 빅뱅의 영상을 봤어요. 그 후로 엄청난 팬이 돼서 공부하던 일본어도 팽개치고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한국말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 문화가 좋아졌어요.

한국의 어떤 점이 엘로디를 매료시켰죠?
한국 문화 중에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정(情)이에요. ‘정’이라는 발음도 좋아해요. 한국 사람들은 정이 있어요. 겨울에 감기에 걸렸을 때 친구들이 와서 걱정해 주는 데 따뜻함을 느꼈어요. 여기서도 제가 한국말을 하면 할머니들이 좋아하면서 물도 주고 먹으라고 과일도 줘요. 마음이 무척 따뜻해요.

엑스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교수님이 소개해 줬어요. 방학 때 프랑스에 가족들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남기로 했어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사람들 많이 만나고 친구도 사귀고 싶어서요. 엑스포는 프랑스에서도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만큼 큰 행사인데 참여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한국에 와서 여러 기억이 많은데 여수가 제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꼽는다면.
프랑스관에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고 갔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저도 기뻤어요. 제가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오면 반갑고 좋아요. 제가 아는 한국 문화와 사람에 대해 많이 얘기해 줬어요.

글·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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