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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지표보다 국민 피부에 닿는 정책 펼쳐야




“지표로 보는 참여정부의 4년 성적표는 결코 나쁘지 않다.”

이것은 지난 노무현정부가 4년차를 지나면서 발표한 자료의 첫 줄 내용이다.
참여정부 대신 이명박정부로 주어만 바꾸어 놓으면 이번 정부가 발표할 성과보고서의 제목이 될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다수의 국민은 이 성적표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최연소 현대건설 회장에 오르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해 냈고, 청계천 복원과 시내버스 운송체계의 개선을 통해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경제전문가’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했다. 그 결과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화려하게 출범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자 참여정부가 협상한 한·미 FTA의 비준을 서둘렀고, 그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대규모 촛불시위로 국정의 중심이 온통 반미주의와 결합된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광우병 우려에 집중되었을 때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는 이미 세계경제에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선진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대응은 비교적 신속하고 능동적이었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효과적이었다. 급격한 수출감소를 재정투자의 확대와 예산의 조기집행을 통해 상쇄시키고, 급속히 빠져나가는 외환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고 국제공조를 통한 세계경제 안정화에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결과, 2009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경제성장률은 0.2퍼센트의 플러스로 돌아섰고, 2010년에는 6.2퍼센트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2011년 예상보다 다소 낮은 3.6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감안한다면 그리 나쁜 성적표는 아니라고 할수 있다.

2011년에는 세계경제 불황의 어려움 속에서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고 2백76억5천만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14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 갔다.

내한 외국인 관광객의 수도 9백79만명을 기록하여 관광객 1천만시대를 눈앞에 두었고, K팝이나 온라인게임, 드라마, 음식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한국의 대외적 위상은 문자 그대로 ‘단군 이래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힘들고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도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퍼센트로 당초 목표인 3.0±1퍼센트를 충족시켰고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실업률도 3퍼센트에 불과하여 지표로서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0퍼센트를 넘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은 35퍼센트를 넘나든다.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베이비부머들은 노후대책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른 투쟁만을 일삼고 있고, 정부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세계 시장점유율이나 영업이익도 크게 늘어나 연봉의 몇백 퍼센트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아우성이다.

한쪽에서는 풍년에 배가 터져 죽고, 다른 쪽에서는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상황이 이와 다를까? 성장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과실은 소수의 일부 계층에만 집중되는 상황…. 적어도 다수의 국민이 양극화를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현 정부가 양극화의 위협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통합위원회나 동반성장위원회 등 대통령 특별위원회를 통해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중소·대기업 간 공생발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 질서를 해치는 대기업의 행태를 막기 위해 노력했고 대통령도 물가안정, 전통시장 활성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 등 공정사회와 공생발전을 위한 정책들을 적극 추진했다. 이 정책들이 가시적 성과를 나타냈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조금은 완화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정책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나 정부의 일방통행적 추진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나누기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의 평균 노동시간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을 줄여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은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은 근로자를 새로 충원할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늘고 노동유연성은 줄어든다. 그동안 초과근무 수당을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연봉의 일부로 생각해 왔던 근로자들은 일정부분 이를 포기해야 하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노사정 협의가 필수적이며, 결국 합의가 되지 못하면 현실화하기 어렵다.

노사정 합의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인데, 불행히도 우리 노사정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없다면 스스로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해관계자들과의 별다른 소통 노력도 없이 일자리나누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과연 이 정책이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정책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 것이다. 정말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정책효과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하는 것, 그것이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표’에 대한 국민의 허탈함과 배신감을 줄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글·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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