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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멈춰 프로그램이 교실을 바꾸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영석(가명)이는 지난해까지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같은 반이었던 민수(가명)가 이를 주도했다. 그런데 민수가 올해도 같은 반이 되어 영석이는 1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새 담임선생님은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과 ‘멈춰’를 알려주면서 “우리 반에서는 절대 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선생님의 단호한 태도에 민수도 위축되었는지 한동안은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지냈다.

사건은 선생님이 출장을 간 날 터졌다. 민수가 지난해에 했던 것처럼 영석이 의자를 앞뒤로 흔들고 연필로 머리를 탁탁 치며 시비를 걸었다.

영석이는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멈춰”를 외쳐보았지만 생각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모기소리만한 “멈춰” 소리에 민수는 순간 멈칫했지만 “뭐, 어쩌라고” 하면서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 영석이는 주변 친구들이 모두 침묵한 채 구경만 하던 지난해 일을 떠올리곤 고개를 숙였다.




그때, 꿈결처럼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 영석이가 싫다고 하잖아.”

주변에서 야구공을 가지고 놀던 철민(가명)이와 유석(가명)이가다가와 민수를 제지했다. 그러자 교실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뭔데, 무슨 일이야?” 하며 영석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위축돼 있던 영석이는 친구들의 지지에 용기를 얻어 이번에는 힘껏 “멈춰”를 외쳤다.

민수가 당황한 듯 “뭐, 그냥 장난이었어” 하며 상황을 얼버무리려 하자 누군가가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멈춰가 나왔으니까 회의와 역할극을 해야지”라고 말했다. 민수는 마지못해 역할극에 참여했다. 이 역할극을 통해 민수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영석이에게 “진짜 기분 나빴을 것 같아. 미안해”라며 사과를 했다.

올해 초 지방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침묵으로 방관하던 다수의 아이들이 피해자 편에 서서 학교폭력을 해결한 경우다.

학교폭력 예방에 적극적인 청주 동주초등학교 김미자 교사는 “평화샘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는 50여 개 교실에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평화샘 프로젝트는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전문가들이 연구해 만든 ‘평화로운 교실 만들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평화샘 모임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두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학교폭력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학교폭력 멈춰!>가 그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평화샘 프로젝트는 학교폭력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북유럽 사례들을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것이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이다. 노르웨이에서 적용 후 학교폭력이 50퍼센트 이상 감소한 것으로 평가된 이 프로그램은 폭력 예방은 물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고 있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4대 규칙’과 ‘멈춰 제도’, 그리고 ‘역할극’이다.

‘4대 규칙’은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도울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등이다.

‘멈춰 제도’는 아이들이 방관자가 아니라 방어자가 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향해 “멈춰”라고 외치며 팔을 뻗으면 주변의 학생들도 함께 “멈춰”라고 소리치는 동시에 교사에게 이를 알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평화샘 프로젝트의 하나인 ‘멈춰 제도’는 그동안 충북지역 학교에서 시행돼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그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학교에서도 이 프로그램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의 경우 검찰청 주도로 ‘멈춰 프로그램’을 관내 45개 학교에서 운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7일 안양, 과천, 군포, 의왕지역 45개 중학교 교장과 학생지도교사, 범죄예방위원 등 1백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멈춰 프로그램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글ㆍ서철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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