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해 12월 16일,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 후에는 ‘FTA 시대 한국 농어업은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정삼(39) 서기관은 유통정책과 실무자로, 조기심(52) 대표는 성공한 영농 CEO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토론회를 통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서기관(당시 사무관)과 조 대표는 2005년 채소특작과 파프리카 담당사무관과 파프리카 영농인의 자격으로 처음 만났다.
“파프리카는 1995년 일본 수출에 성공한 후 수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유망 소득작물이지요. 파프리카 생산량의 대부분은 일본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신선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일본의 수입농산물 안전성 기준을 준수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2003년 일부 화훼 농가에서 파프리카를 수출하면서 안전성을 위반했어요. 화훼와 파프리카는 안전성 기준에 차이가 많은데 그걸 몰랐던 거죠. 이 때문에 한국산 파프리카 전체 대일 수출이 중단되는 위기에 처했죠. 막막했습니다.”
조 대표는 당시를 “한국 파프리카 산업의 최대 위기였다”고 표현했다. 일본은 1996년부터 수입 농산물 농약안전성관리를 위해 엄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일 수출 파프리카의 경우 2003년 4월 3회에 걸쳐 연속적인 농약잔류기준 위반으로 전수검사 후 통관이라는 제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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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부에선 ‘수출 파프리카 안전성 관리 및 수출 ID 등록제도’(이하 ID 등록제도)를 도입하고 일본 측과 협상을 벌여 6개월 만에 수입 제재를 해제하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정부가 전 생산농가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관리하는 ID 등록제도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파프리카 농가가 몇백 곳인데 그 중 단 1곳의 파프리카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면 한국산 파프리카 전체에 수입 금지조치가 취해졌죠. 안전성을 지키며 철저하게 파프리카를 키운 농가에는 불리한 제도였습니다.”
조 대표는 2005년 현장 조사를 나온 이정삼 사무관에게 파프리카 대일 수출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상세하게 전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나이 어린 사무관에게 말한들 반영이 될까 생각했는데, 이 사무관은 그 자리에서 ‘네,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해결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이 사람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후 이 사무관은 철저한 조사와 파프리카 대일 수출 관련 제도를 연구해 ‘수출업체별 안전성 관리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관리체계를 만들었다. ‘수출업체별 안전성 관리 시스템’은 수출업체와 생산농가가 전속계약을 맺고, 수출 도중 문제 발생 시 그 수출업체와
농가가 함께 책임을 지는 제도다.
“저도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지요. 그런데 이 사무관이 ‘저는 제가 추진한 정책이 문제가 생기면 옷을 벗든지 자리를 옮기면 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생산농가의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정착되면 대한민국 파프리카 산업의 길이 트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믿고 따라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조 대표는 이후 이 사무관을 절대적으로 신임했다고 한다. 젊은 사무관의 패기는 신뢰로 이어졌고 극소수 농가의 잘못으로 한국농민 전체가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데 점차 많은 농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게 됐다. 물론 ‘수출 우수 업체 선발’ 등으로 이후에도 수출업체 및 생산자단체로부터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결국 2006년 6월 일본은 ‘수출업체별 안전성 관리시스템’을 인정했다. 우수 수출업체는 수출에 날개를 달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안전성 관리가 허술한 수출업체와 농가는 관리를 강화하거나 수출을 포기했다.
대일 수출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사무관은 파프리카 농업의 선진화를 위해 “‘제스프리’ 키위처럼 하나의 단일창구를 만들어서 수출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제안을 새기고 있던 조 대표와 17개 파프리카 수출업체들은 지난 1월 6일 파프리카 단일수출 브랜드인 ‘KOPA(코파)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둘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소통이 잘됐고 파프리카 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조 대표는 “정책입안자와 필드에 있는 국민들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면서 “정부도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함께 공생한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만들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소통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함께 일할 당시 나와 이 사무관은 최고의 파트너십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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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정책과 서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삼 사무관’은 조 대표의 말에 “오히려 젊은 사무관의 말을 믿고 따라주셔서 힘이 났다”면서 “사무관 초기 시절 조 대표를 비롯해 지지해주신 농민들 덕에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며 공을 돌렸다.
몇 번의 파고를 거쳐 현재 일본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까지 수출시장을 넓힌 한국의 파프리카 농가들은 이제 FTA라는 또 다른 파고를 뛰어넘어야 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조 대표는 “한국의 파프리카는 한·미FTA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면서 “이제는 한·중FTA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선 한국의 고품질 고가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높다”면서 “농가에 따라 피해도 예상되지만 파프리카의 경우 수혜 품목이 예상되는 만큼 시설확충으로 단지화·규모화해 품질 고급화에 더욱 힘쓴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울러 “이 서기관 같은 공직자가 늘어난다면 FTA는 물론 농업발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 “현장에 있는 우리 농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발 빠르게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해준 이정삼 서기관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글·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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