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공장 문을 열자 후끈한 공기가 밀려나왔다.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 속에서 직원들은 분주히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입사 3개월을 맞은 황대로(37)씨도 있었다. 작업에 집중하는 표정이 썩 잘 어울렸다.
“휴대전화 부품을 주력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안테나를 많이 생산하는데 국내는 물론 해외의 세트업체에도 납품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일이 많아서 잔업을 하고 있는데 힘들기보다 즐겁습니다.”
황씨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절망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봄에 시작한 노숙생활이 벌써 5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멀쩡한 직장인이던 그가 지하도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처지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노숙자에게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절어 지내는데 그 안에 끼지 않으면 폭행 등 보복을 당합니다. 싫어도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졌습니다. 무기력한 자포자기의 삶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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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황씨는 착실한 직장인이었다. 특수 방음 분야에서 5년간 경력을 쌓은 기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며 감원이 됐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는 불운이 이어졌다.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중의 돈이 바닥났고 급기야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노숙인쉼터에서 고용노동부의 취업 프로그램을 권하더라고요.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저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정부 정책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는 취업 취약계층에게 취업 상담부터 알선까지 취업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 황씨를 담당한 이는 고용노동부 인천북부고용센터의 최경애 실무관이었다. 비주택 거주자를 위한 집중홍보의 일환으로 황씨가 도움을 받고 있던 ‘노숙인 쉼터’를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최씨의 기억이다.
“먼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취업 실패자들은 대부분 ‘마음’에서 집니다. 본인의 목표가 있음에도 마음이 없어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거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은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집단 상담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대화하고 면접 등 취업 훈련과 직무스트레스 상담도 제공했습니다. 황 선생님(그는 황씨를 선생님이라 불렀다)은 매우 잘 따라온 경우예요.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멀쑥해지고 취업에 대한 의지도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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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패키지는 1개월의 상담과 3개월의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 3단계로 구성돼 있다. 황씨의 경우는 직업훈련 기간을 거치지 않은 사례다. 최대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마침 경력이 없는 그에게 기회를 주는 회사가 나타나기도 했다. 따로 훈련을 받는 것보다 현장에서 일을 배우는 편이 낫다는 것이 회사 측의 판단이었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이 회사 오영근 이사의 회고다.
“마땅한 경력사원이 없으면 대체로 아웃소싱했습니다. 그런데 고용센터의 소개도 있었고 면접 시 고용센터 관계자가 동행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갔습니다. 경력이 없지만 정규직으로 채용했죠. 막상 일하는 걸 보니 밝고 성실하고,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업 후에도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은 이어진다. 6개월 동안 취업을 유지하면 1백만원의 취업성공수당을 제공한다. 장기근속을 유도해 직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다. 사업주에겐 고용촉진지원금을 지급해 채용의 유인을 넓혔다.
하지만 황씨는 이런 제도적 지원이 없다 해도 오랫동안 일할 결심이다. 노숙생활을 통해 일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황씨는 “경력이 없어 일이 서툰데 주위에서 너무 잘 도와줘서 큰 문제 없이 적응하고 있다”며 “더 열심히 일해서 제 몫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씨는 요즘 노숙인쉼터에서 ‘취업 전도사’로 통한다.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숙인들에게 취업을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권한다.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나도 됐는데 너희라고 왜 못 하겠냐,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거냐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몇 명은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취업에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취업의 유지다. 많은 사람들이 적응에 실패하고 실업상태로 돌아오고 있다. 인천북부고용센터의 경우 취업 후 6개월 이상 근속자의 비율은 60퍼센트 안팎이다. 인천북부고용센터의 최 실무관은 “취업을 유지하지 못하고 탈락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별도로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 실무관은 “인생이 바뀌려면 마음가짐과 습관이 변화해야 하는데 어떤 연구를 보니 습관이 바뀌려면 최소 21일은 필요하다고 합니다”라며 “원하는 사람에 한해 4주 정도의 숙식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과 함께 황씨는 다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목표는 이미 이뤘다. 쉼터에서 제공하는 고시원을 나와 월세방을 얻어 당당히 독립한 것이다.
2차 목표는 운전면허증 취득이다. “올해 안에 꼭 따겠다”고 황씨는 멋쩍게 웃었다. 내년에는 전셋집을 마련할 계획으로 적금도 들었다. 그 다음엔 가정을 꾸릴 참이다.
“요즘엔 가족과 연락해요. 노숙생활하면서 연락을 끊었거든요.
그동안 무슨 일 있었냐고 묻지만 별일 없었다고 합니다. 알면 속상하잖아요.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동생과 연락해서 병문안도 갈 계획입니다.”
글·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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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